장규성 감독의 영화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착하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아니면 어떤 목적 때문에 그 착함을 억지로 눌러두고 위악적인 행동을 한다.
그 목적이란 것도 아주 개인적이거나 사소하다. <선생 김봉두> 의 김봉두처럼 돈봉투를 받다 들켜 시골 분교로 발령 난 교사의 서울 수복이거나, <여선생 vs 여제자> 의 여미옥처럼 노처녀의 잘 생긴 총각선생 차지하기 등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사회 윤리나 직업 윤리, 우정 같은 소중한 것을 과감히 깨려 한다. 여선생> 선생>
문제는 그들이 약삭빠르지도 영악하지도 못하다는데 있다. 어설픔은 그만큼 순수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게다가 방해하는 라이벌이 늘 등장해 곤욕을 치른다. 그 라이벌이 정말 적이라면 좋은데, 그게 아니고 결국에는 주인공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친구나 제자)들이다.
이런 인간이 갈 수 있는 길이란 뻔하다. 익숙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하기에 상황은 꼬이고, 그럴수록 발버둥치지만 번번히 넘어진다. 애초 목적달성이란 불가능하다.
대신 감독이 좋아하는 ‘착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크고 진실한 것을 얻는다. 때문에 ‘장규성표 영화’는 시트콤 냄새가 강하다. 과장된 코미디로 출발해 훈훈한 감동을 찾아가는 휴먼드라마로 끝날 수 밖에 없다.
관객들은 편안하다. 처음부터 그저 주인공이 심각한 상황에서 벌이는 온갖 해프닝을 보며 웃으면 된다. 그를 미워할 필요도 없다. 결말도 신경 쓸 필요 없다.
우리의 주인공은 본래부터 ‘착한 사람’ 이었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니까. 게다가 그것만으로 심심할까 봐 사건과 이야기 전개는 꼭 사회풍자의 틀 속에 넣는다.
<이장과 군수> 역시 이 공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주인공인 노총각 조춘삼(차승원)은 착한 사람이다. 형과 누나를 위해 대학 진학포기하고 그들이 ‘나 몰라라’ 하는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농촌에서 산다. 그의 라이벌은 초등학교 시절 늘 반장이었던 ‘자기 다음(부반장)’ 이었던 죽마고우 노대규(유해인). 이들이 옛날과 뒤바뀐 이장과 군수로 만났다. 그러니 춘삼의 심사가 어떻겠나. 이장과>
시트콤이 그렇듯 재미는 바로 이 전복적 상황설정과 그 상황을 심리적으로는 부정하면서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춘삼이란 인물의 행동과 반응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가 쏟아내는 어이없는 어깃장과 ‘둘의 화해와 우정’이란 정해진 코스를 향해 달리기만 하면 된다.
남은 과제는 춘삼의 부산스러운 행동과 그의 그런 행동이 한심스럽다는 듯 짧고 냉정하게 받아 치는 대규를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 차승원은 이미 이런 작품에 익숙하고, 처음으로 큰 역을 맡았지만 유해인 역시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 봤자 웃고 나서 잊어버리는 코미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풍자를 위해 끌어들인 주변인물들(백사장, 부군수)도, 사건(군수 선거, 방폐장 유치)도 지나친 상투와 단순화로 패러디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상관 없다. 애초 <이장과 군수> 의 눈높이가 거기까지는 아니니까. 29일 개봉. 15세관람가. 이장과>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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