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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3不정책을 없애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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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3不정책을 없애려면

입력
2007.03.2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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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와 몇몇 사립대가 정부의 삼불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에 다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이 문제가 정치쟁점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폐지론자들은 이 정책이 학교의 자율권을 제약해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장하고, 존치론자들은 이 정책을 없앨 경우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계층간 교육불평등이 더욱 커지리라 주장한다. 둘 다 그럴싸하다.

개인적으론 삼불정책을 다소 완화해도(이를테면 본고사의 허용) 괜찮겠다는 쪽이다. '경쟁력' 문제를 떠나, 사립대학들의 학생선발 방식에까지 국가가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 문제는 독과점 구조

그러나 삼불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논점을 잘못 잡은 가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흔히 '계급전쟁'(강준만) 또는 '재생산'(부르디외)이라 부르는 교육의 부정적 효과가 대학입학 전형방식이라는 기술적 차원에서 비롯된다는 그릇된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듯, 공교육이 사교육에 치일 정도로 중등교육이 일그러져 있는 것은 대입 전형 방식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신이나 수능의 비중을 높이든 낮추든, 내신평가가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본고사나 논술 시험을 보든 안 보든, 그것이 한국 중등학교 교실 안팎의 살벌한 풍경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 살벌함의 근원은 전형방식이라는 기술적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10대 말 어느 시기에 특정한 방식으로 측정된 지적 성취도가 한 사람의 그 이후 삶을 결정해버리는 사회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문제는 서울대(와 몇몇 사립대) 출신자들로 하여금 한국 사회의 물질적 상징적 재화를 독(과)점하도록 허용하는 구조에, 더 나아가 그 독(과)점을 강화하는 데 유리하게 짜인 구조에 있는 것이다.

서울대 출신자들이 한국사회의 '좋은 것'을 독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 그들 개개인이 다른 대학 출신자들에 견줘 뛰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대학 서열이라는 제도적 위계에서 서울대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의 화사함이 이 대학 졸업자들 개개인의 능력에 대한 사회의 판단을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오염시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는 서울대 출신자들의 압도적 독과점을 넉넉히 설명하지 못한다. 더 큰 이유는, 뛰어날 가능성이 큰 이 개인들이 거대한 규모의 '벌(閥)'을 형성해 배타적 상호부조를 실천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게다. 뛰어남이 공인된 집단과 연을 맺어야 한다는 강박이 계급전쟁의 강도를 높이며 한국 중등학교 교실을 황폐하게 만든다.

이 계급전쟁의 강도를 낮추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입시제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벌'의 힘을 줄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서울대 정원을 큰 폭으로 줄이는 것이다. 서울대가 본고사나 고교등급제에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은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다른 대학에 빼앗기기 싫기 때문일 게다.

이것을 이기주의라 비난하는 것은 문제 해결방식이 아니다. 해결방식은, 학생선발 방식을 대학에 완전히 맡겨 학교측이 판단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뽑도록 하고, 그 대신 입학정원을 크게 줄여 장기적으로 서울대의 독점력을 약화하는 것이다.

● '3不'과 정원의 빅딜을

3불정책 비판의 전위에 선 듯한 정운찬씨도 서울대 총장 시절 지적했듯, 인구 3억인 미국의 상위권 10개 사립대학이 한 해에 배출하는 학생은 1만 명 남짓인 데 비해, 인구 4천9백만인 한국의 상위권 세 대학 신입생 수는 해마다 1만5천 명에 육박한다. 이런 '대중교육'으로는 이 대학들이 되뇌는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3불정책 폐지를 요구하는 대학엔 학생선발 방식의 자율권을 완전히 주는 한편, 입학 정원을 지금의 10분의 1 이하로 줄여 엘리트적 성격을 강화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대학의 '경쟁력'에도 이롭고, 계급전쟁의 토양이 되고 있는 '벌'의 약화에도 이롭다. 3불정책과 입학정원을 맞바꾸는 빅딜을 제안한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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