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이 우광훈에게
오늘 왜 그래요? 네? 명성이 그리워졌다고요? 욕심?
그거 당연히 있어야죠. S씨가 왜 소설을 더 이상 못쓰는지 알아요? 그 사람 재주는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허영이 없었죠. 성공해야겠다는 욕심이 없었던 거예요. 허영, 그거 나쁜 거 아니에요. 허영이 없는 예술가는 지금의 그 자리에 쉽게 안주해버리죠.
하지만 재데뷔, 그건 정말 꼴사나운 거죠. 설마, 어디 문학상에 내려는 건 아니겠죠? 훈장 더럭 더럭 달아놓는다고 명성이 쌓이는 건 아니니까요.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해야죠. 광훈씨 정도면 해서도 안 되고요.
그게 아니라고요? 그럼, 왜 그래요? 광훈씨 지금 뭔가 대단한 걸 썼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도 예전엔 그랬어요. 내가 쓴 시(詩) 한 편에 세상이 발칵 뒤집어 질 줄 알았어요. 밤새 게워낸 언어의 장정들 앞에서 부들부들 떨던 내 어릴 적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네요. 하지만 세상, 안 뒤집혀졌잖아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 원고 그냥 계약한 출판사에 넘기세요.
2007. 1 민정
우광훈이 민정에게
민정씨, 에스파냐에서의 여행은 즐거우셨는지요. 여독으로 인해 몸살이 났다는데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전 어제 대구에서 장정일 형을 만났어요.
형이 님의 출판사와 저를 연결시켜 주셨거든요. 제 작품과 저란 인간에 대해 많은 질타를 늘어놓으시더군요. 민정씨 이야기도 했어요. 집으로 돌아와 뭔가를 끌쩍거렸는데, 민정씨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시인 앞에 이런 거친 생것을 보여 드린다는 게 참 쑥스럽군요. 그래도 꼭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문득 명성이란 것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나는 길이 아닌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갔고, 그리고 파멸했다. 가서는 안 되는 길, 내 인생의 등불 같은 이들이 말리는 그 길을 갔다.
결코 가까이에서는 쳐다볼 수조차 없는, 태양 앞에서 내 욕망을 토해내니 비로소 눈물이 났다. 돌아온 탕자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형의 말이 떠올라 또 다시 두려워졌다. 그래서 강으로 가는 길이 더 깊고 어두운 동굴처럼 느껴졌다.
강한 자가 되고 싶었다. 강한 자는 성공한 자가 아니라, 자신이 약한 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 명성은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기다려야 하는 것. 나는 알고 있었지만, 또 다시 무모해졌다. 나는 참 무모한 길을 갔다. 그리고 문득 두려워졌다. 반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영원히 부족해졌다.’
민정씨, 이번 일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계약에 대한 해지는 못난 제가 민정씨에게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용서하세요. 언젠가, 용기가 생긴다면 그 동안 있었던 일 속 시원히 다 말씀드릴게요. 그럼. 잠 못 드는 밤, 꾸벅.
우광훈 올림. 2007. 2
△ 김다은의 우체통
'원고계약 해지' 사건 반성의 편지
우광훈씨는 ‘어느 날 문득 명성이라는 것이 그리워져’ 준비된 원고를 문학상에 응모했다. 앞서 출판사를 소개해준 ‘장정일 형’과 원고 계약을 맡았던 민정씨의 ‘배려를 배신’하고, 결과적으로 문학상에서도 탈락했다.
장정일 형에게는 반성의 뜻을 직접 만나 전했지만, 민정 씨에게는 사과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우광훈은 “예전에 극소수의 독자가 열광하는 작가를 꿈꾸었다”고 한다. 이 귀한 자기검증과 반성으로 그 길을 곧 찾지 않을까.
소설가ㆍ추계예술대 교수
29일자로 '작가의 우정편지'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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