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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FTA 신기루

입력
2007.03.2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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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蜃氣樓)는 대기의 이상 굴절현상으로 인해 공중이나 땅 위에 존재하지 않는 물체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한자로는 상상의 동물인 이무기가 쉼을 내쉴 때 보이는 누각이라는 의미다.

신기루는 지표면의 공기가 뜨거울 때 주로 나타난다. 여름철 아스팔트 위나 사막처럼 지면 온도가 높아지면 공기의 밀도가 희박해지면서 빛의 이상굴절 현상이 나타나 실체를 왜곡하거나 과장한다.

● 걱정스런 FTA 과잉 의미부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최종 담판에 돌입하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는 느낌이다.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신속무역협상권(TPA) 종료에 맞춰 협상 데드라인이 고정되면서 찬성이나 반대측 모두 막판 총공세에 나서는 양상이다.

반대세력은 연일 가두시위를 거듭하고, 정부는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한 광고전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10개월 간 협상이 진행되는 내내 입을 닫고 있던 정치권 인사들까지 뒤늦게 뛰어들어 단식을 벌이는 등 분위기는 날로 과열되고 있다. 양측의 격앙된 주장을 듣노라면 마치 한미 FTA에 우리나라 운명이라도 걸린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과 시장을 하나로 합치는 FTA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그 의미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거나 과잉 해석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미 FTA는 경제파탄과 대미종속으로 이어질 매국적 조치가 아니며, 반대로 선진경제로의 진입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도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대외개방이 갖는 상반된 효과를 외면한 채 한쪽 면만 강조한다면 왜곡된 신기루를 만들 뿐이다.

개방의 긍정적 효과는 우리 경제가 지나온 발자국이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198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나 외환위기 직후 지금보다 더 큰 폭의 개방 조치가 있었지만 우리 경제는 흔들리지도, 망하지도 않았다.

유통시장을 열었지만 국내 시장을 괴멸시킬 것으로 예상했던 외국계 업체들은 국내업체에 밀려 철수해버렸고, 스크린쿼터 축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 극심한 반대 속에 가전시장을 일본에 개방했지만, 한국시장을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코끼리 밥솥과 소니TV는 한국산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개방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피해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도 경제 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없지 않다. 또한 개방의 득실을 생산자 입장에서만 따진다면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격이다. 소비자가 누리는 혜택도 함께 봐야 균형이 잡힌다.

그렇다고 개방이 절대선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독단적 논리다. 충분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개방을 한다면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준비 부족은 이번 협상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 이익의 균형 확보가 협상 관건

과거 개방은 주로 국제사회가 모두 합의하는 다자간 협상에 따른 것이지만 한미 FTA는 양자 협상이다. 서로 주고 받는 게임이다. 양측 주장의 우열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다.

협상의 관건은 오로지 '이익의 균형'이어야 한다. 우리가 주는 만큼 미국도 우리에게 주어야 거래가 성립된다. 일방적으로 밑지는 협상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협상 막판에 미국이 우리가 요구하는 섬유나 자동차, 무역구제에 아무런 양보 의사를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미국이 정한 협상 시한에 쫓기는 듯한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다. FTA는 우리만큼 미국도 필요로 한다. 미국이 말레이시아와의 FTA를 포기할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제 미국의 FTA 상대는 한국만 남았다.

미국 정부의 입장이 더 다급할 수도 있다. 이제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국민 모두가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협상의 성과를 냉철하게 평가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신기루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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