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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의 하이킥 라이프] (3)'노숙한' 청년 세대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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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의 하이킥 라이프] (3)'노숙한' 청년 세대의 출현

입력
2007.03.2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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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사동 집필실 앞에 서있는 목련 한 그루는 꽃봉오리에 빗물을 그득히 머금고 이른 봄 개화를 준비한다.

신장 173cm의 서울 아가씨 최화성은 흰색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흰색 티셔츠와 흰색 스커트를 입은 순백색의 옷차림으로 인터뷰를 하러 집필실에 들어섰다. 의상 앙상블이 목련화처럼 산뜻하게 보여서 같은 사무실을 쓰는 몇몇 시니어 세대가 은근히 귀를 쫑긋거린다.

그녀는 겉보기와 생판 다르다. 도도하지 않고 상냥하며 표현력이 문학적이다. 무엇보다 눈높이를 맞추어 시니어 세대를 ‘예쁘게 볼 수 있는’ 원숙한 시선을 가졌다. 1977년 생, 금년에 30세가 찬 최화성은 ‘노ㆍ중ㆍ청은 각각 별개의 인생 토막이 아니라 한 줄로 이어지는 운명공동체’라는 이치를 터득한 신인류다.

문예창작과를 나온 최화성은 자기를 성장시키는 것은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2004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외국어학원에 가서 1년간 유일한 한국어 강사로 일했다. 귀국한 직후 문화관광부 산하 특수법인인 전국문화원연합회에 들어간 그녀는‘땡땡땡! 실버문화학교 담당’이 된다.

‘땡땡땡! 실버문화학교’운동은 전국 234개 시군구의 지방문화원 중심으로 펼쳐 나가는 노인문화참여 프로젝트. 연합회의 의뢰로 전문적인 문화기획자들이 모여 창출한 새로운 개념의 ‘실버성장운동’이다.

한 번도 노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최화성이 시니어 세대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 바꾼 것은 실버문화학교에 ‘올인’한 결과다.

●최화성, 어르신과 만나다

그녀가 어르신들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겨울. 실버문화학교의 문화예술 교육과 활동에 참여한 시골 어르신들의 열정은 손을 대면 ‘앗 뜨거’를 외칠 만큼 불탔다. 실버세대는 문화학교를 거치며 전통공연, 패션쇼, 문화유산전승, 어린이야생초교육, 고인돌지킴, 한국사구연, 희망연극 등 광범한 분야에서 잠재력을 발견한다.

2006년에 최화성은 이메일 주소 명을 ‘hotproject'로 바꾸고 ‘매우 뜨거운’ 어르신들과 계속해서 만났다. 활기찬 실버문화 기운에 각지의 시골 마을은 들썩거렸다. 사고는 객기로 충만한 청년들이 치는 걸로 알았는데, 어르신들은 문화를 가지고 대형 사고를 치고 있었다.

어느 날 최화성이 물었다.

_ 왜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내일 하면 되잖아요.

“내 생애 마지막 교육이 될 테니까. 늙은이들에게 내일은 없을 수도 있어.”

최화성은 ‘매우 뜨거운’ 어르신들이 빠르게 분침이 움직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고 여겨 공연히 코끝이 찡했다고 진술한다.

●최화성, 변하다

스물아홉의 끝자락에서 최화성은 어르신들에게 반해버렸다.

“내가 만난 어르신들은 잘 웃고, 잘 떠들고, 잘 기뻐하고, 잘 슬퍼하고, 질투가 많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어울리고 싶어 하고, 놀기 좋아하고, 그러나 모두 저마다 개성이 달랐다. 난 어르신이 고유 영역에서 위대한 생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 아이와 같은 순수한 감성과 어른의 농익은 통찰력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 신체적으로 조금 낡았을 뿐이다.”

낯가림이 심했고 사교성이 부족했던 그녀는 전국의 어르신들과 어울리면서 성격이 변했다.

“어르신들은 서울 아가씨인 나를 예뻐했고, 나도 어르신들이 예뻤다. 현장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문화로 맺어진 친구이기도 하지만, 나의 부모이기도 하고,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2007년에도 화성은 무조건 ‘올인’ 이다.

이런 최화성의 조숙에 비하면 필자는 오히려 지진아로 여겨진다.

●실버는 황금빛깔

결코 늙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늙음을 감지하는 계기를 맞은 때는 1982년 3월이다. 나는 한국일보 파리주재 특파원으로 부임한 후 며칠이 지나 샹젤리제의 영화관에서 미국 영화 ‘황금연못(On Golden Pond)’을 보았다.

헨리 폰더와 캐서린 햅번은 황혼기 노부부의 신뢰와 사랑, 죽음을 앞둔 인간의 갈등과 초월을 황금빛 노을에 물든 호숫가를 배경으로 실제 나이에 어울리게 연기했다. 당시 40대 청 장년기에 접어든 나는 운명적인 늙음이 ‘황금빛깔’을 띌 수 있다는 점에 눈떴다. 그러나 ‘황금연못’의 노년은 정관주의(靜觀主義)적 노년이다.

오늘 날 진정한 실버의 상은 정관주의적 실버가 아니라 실천하고 책임지는 ‘노인 청년(실버 유스)’의 상이다. 그보다 더욱 뚜렷하게 부상하는 현상이 있는데, 이를‘청년의 노년화’ 추세라고 부르기로 한다.

1976년생인 남미진(서울문화재단 홍보팀)은 어머니의 노년기 즐거운 활동을 보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졸업논문 주제를 ‘노인문화복지’로 잡았다. “저도 늙어서 그렇게 살아야 하니까 그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전국문화원연합회 주최로 ‘2006 실버문화 사랑축제’가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것은 작년 11월. 이 행사를 기획한 문화마케팅회사 쥬스컴퍼니(Juice Come Funny)의 마케팅 팀장인 1979년생 김준영은 “축제를 준비하면서 어른들에게 배운 삶의 에너지를 보고 오히려 저 같은 젊은 세대가 자극을 받고 변화를 겪었다”고 말한다.

쥬스컴퍼니 총감독 윤성진도 ‘땡땡땡! 실버문화학교’기획자문위원으로 참여할 때부터 노년문제에 자신의 노년을 접목시키는 중대한 변화를 경험한다. 그는 실버와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에 시선을 고정하고 ‘실버는 황금빛깔’이라는 표어를 설정한다.

“문화수용 계층의 실버세대가 실천적인 문화창작 계층으로 바뀌는 현상에 유의했다. 그래서 ‘문화 실버족’을 개념화하고 ‘실버 컬티즌(Silver Cultizen)’이라고 명명해 보았다. 새로운 문화 부족의 탄생이다.”

성균관대 철학과를 나와 대학원 공연예술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윤성진(1968년생)은 ‘팔방미인형 프로듀서’의 전형. 지난 8년 동안 150여 편의 무용 연극 뮤지컬 악극 공연을 기획했다. 그는 실버문화 산업은 블루오션 사업영역이라고 간주하고 그 방면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60세를 넘어 20년 동안 문화예술 활동을 하려면 40대부터 준비해야 가능하다고 여긴다. 이제는 속도전이 아니라 하나하나 준비하는 지구전을 거쳐야 2모작 인생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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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의 실버화

인사동과 탑골공원은 1990년대 홍대 앞처럼 신세대 실버들의 공간으로 성격이 바뀌어간다. 나이 60에 새로운 예술취미를 익혀 여가를 즐기는 어르신을 '실버 문화족'이라고 칭하는 것은 청년사회의 오렌지족, 386, N세대와 다름없이 새로운 사고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실버 문화족의 동호회는 청소년 문화동아리처럼 활기차다. 여가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고 있는 것도 실버 세대의 변화에 한 몫을 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시니어 세대가 청년문화를 모사하듯 20대, 30대의 청년세대가 시니어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르는 경향이 나타난다. '청년의 실버화' 경향은 고용불안과 경쟁과 실직이 넘치는 사회현실을 반영한 것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변신하면서 창의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환경 속의 실버 세대처럼 청년세대도 졸업이나 퇴직 등 인생의 계기가 닥칠 때 재학습을 통해 스스로 변신하고자 한다. 경쟁과 자기성장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지는 오늘날 20대, 30대 청년들은 조기퇴직, 재충전, 만학, 제2의 취업 등을 모색하는 노숙함을 보인다.

기분좋은 QX 홈페이지 www.givenzoneqx.com

글=안병찬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 ann-bc@hanmil.net사진=배우한 기자 skybw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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