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희한하다. 어떻게 하나같이 이럴까. 영화인 출신이건, 아니건. 그 자리에 앉으면 예외 없다. 이 정부 들어서도 벌써 몇 명인가. 이구동성으로 “반드시 지켜내겠다” “걱정 마라”라고 말했다.
그 거짓말을 주무장관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소신인데 어쩔 수 없이 경제적 논리, 힘의 논리에 밀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심정 또한 오죽할까.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아무도 그 말과 마음을 믿지 않는다. 너무나 자주 속았고, 같은 영화인으로서 최소한의 동료의식조차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한국영화의무상영)는 반쪽이 된지 오래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미FTA협상에서 ‘현행유보’로까지 양보해 그나마 ‘미래유보’로 두어 나중에 한국영화가 어려움에 처하면 쿼터를 늘릴 수 있는 여지까지 없애려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영화인들의 표현을 빌면 “반쪽 시신마저 관 속에 넣어 못질을 꽝꽝 해 버리는 짓”이란다.
정지영 감독, 배우 안성기 송강호 등 영화인들은 한미 FTA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27일에도 문화관광부를 찾아갔다. 장관의 다짐을 받기 위해서 였다. 자리를 비운 장관을 대신해 담당국장은 “미래유보는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다.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단다.
확고한 입장, 다양한 노력… 많이 들어본 소리다. 요 전 장관도 그랬고, 그 앞의 장관도 그랬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는가. 한 장관이 물러나며 슬며시 스크린쿼터축소 불가피론을 들먹이더니, 한 장관은 어느날 갑자기 경제부처에 굴복해 그 반을 뚝 잘라 미국에 주는데 동의하고 돌아서서는 영화인들 무마책이랍시고 5,000억원 기금에 예술영화전용관 건립이란 한심한 당근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 장관 역시 사실상 협상에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치면서 말로만 “강하게 대처”를 반복하고 있다.
영화인들에게는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제 스크린쿼터는 거의 ‘죽은 자식’이 됐다. 하긴 없으면 어떤가. 지난해 7월부터 반으로 줄었는데도 여전히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사상 최고인 60%를 기록했는데. 오히려 다양한 한국영화의 공존을 위해 ‘괴물’처럼 특정 작품의 스크린 과점을 막는 마이너리티쿼터제, 농담이지만 외국영화쿼터제까지 두자는 소리까지 나왔던 판에.
이러니 누구나 설마 했다. 그런데 영화인들이 예측한 2,3년은 고사하고 불과 1년도 안돼 그 ‘설마’가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올 들어 한국영화의 급속한 추락, 한국영화 두 세 편을 합친 것보다 폭발력이 큰 <300>의 3월 관객몰이(개봉 2주만에 200만명), 5월부터 시작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대공습을 놓고 이런 불온한 상상도 가능해졌다.
5월부터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 3> <슈렉3> <다이하드4> <해리포터와 불사조의 기사단> 이 차례로 상륙한다. 한 영화가 보통 스크린 500여개를 장악한다. 경쟁적으로 늘려 공급과잉지경에 이른 멀티플렉스로서는 손해 안 보고, 망하지 않으려고 물불 안 가린다. 마이너리티쿼터제를 거꾸로 거기에 적용시킨다고? 할리우드가 이런 불공정제도에 가만 있을까. 해리포터와> 다이하드4> 슈렉3> 캐리비안의> 스파이더맨3>
그런데도 장관이란 사람은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에 닥칠 문제를 올 사람, 걸 영화 없을 게 뻔해 텅텅 빌 예술영화전용관을 무려 70개나 더 만드는 것으로 해결하겠다는 넋 나간 소리나 하고 있다. 평소 스크린쿼터 유지가 소신이라면서 왜 자리를 걸고 싸우다 물러나는 장관 하나 나오지 않는 걸까.
이대현 엔터테인먼트팀장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