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장관급 회담 이틀째인 27일 굳은 표정의 협상단 관계자들은 협상 진척 사항을 알려는 기자들 질문에 대부분 묵묵부답이었다. 농산물, 쇠고기, 자동차 등 민감 사안에 대한 팽팽한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동석 농림부 통상정책관(차관보)은 “미국이 (뼈를 포함한) 쇠고기의 전면 개방 일정에 대해 문서로 (확약서를) 써주기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즉 국제수역사무국(OIE)이 5월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위험 등급을 확정하기 전에 언제까지 8단계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할지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사전에 시한을 약속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날 열린우리당 FTA특위에 참석, “쌀 (개방) 요구가 있을 경우 결렬될 수 밖에 없으며,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말했지만 미국도 자동차 농산물 등 민감 분야에서 주요 요구사항을 관철한다는 입장이어서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이날은 장관급 회담 외에 농업ㆍ섬유ㆍ금융서비스 분야에서 고위급(차관보) 회담이 열렸다.
농업은 민 정책관과 리처드 크라우더 미 무역대표부(USTR) 농업담당 수석협상관이, 섬유는 이재훈 산업자원부 2차관과 스캇 퀴젠베리 USTR 섬유담당 수석협상관이, 금융 분야는 김성진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과 클레이 로워리 미 재무부 차관보가 협상에 나섰다.
장관급ㆍ차관보급 회담 등 다각적인 협상 채널이 가동됐지만 중요 사안에 대한 입장차는 여전했다. 농업은 쌀 쇠고기 등 핵심 민감 품목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면서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금융 분야의 일시 세이프가드 도입에 대한 의견차는 여전하다. 한국은 외환위기가 오면 송금을 금지하는 일시 세이프가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농업 분야에서 낙농품에 대해 일정 분량만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을 적용하기로 의견을 모아가는 상태다.
과일류는 품목별로 계절관세를 적용하거나 관세 철폐 이행기간을 장기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최대한 의견차를 좁혀 최종 장관급 협상에는 2, 3개 품목만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종 본부장은 이날까지 협상 상황에 대해 “90%는 끝났다고 생각하는데10%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장관급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하얏트호텔은 한미FTA를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호텔 로비로 진입, 기습 시위를 벌이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소속 회원 9명은 이날 낮 12시25분께 미국 협상단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한미FTA STOP! FTA 중단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였다. 오후 2시28분께는 같은 장소에서 서울ㆍ경기지역 연극영화과 재학생 4명이 ‘스크린쿼터 말살 기도 한미FTA 중단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이다 연행됐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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