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문학은 티베트만큼 들어가기 힘들다지만, 일단 들어가면 나오기도 힘들죠. 할 일이 너무 많아지거든요.” 모호성ㆍ열린 결말ㆍ다중적 의미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제임스 조이스의 대작 <율리시즈> (생각의 나무)를 이번에 세 번째 번역한 김종건(73) 전 고려대 교수는 “퍼도 퍼도 수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그릇”이라고 그 풍성함을 비유했다. 하드 커버에 1,327쪽.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그는 문자 그대로 삼고(三考)의 수고를 감내했다. 율리시즈>
1968년의 초역본의 미진함은 엄밀히 말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출간 당시 조이스의 시력이 몹시 나빴던 것은 둘째 치고, 책을 펴낸 파리의 출판사가 영어에 미숙해 결국 오식 투성이였다.
오죽하면 그 판을 두고 ‘부패본’(corrupted edition)이라 할까. 여하튼 한국어판 <율리시즈> 는 정음사에서 처음 나왔다. 관련인들은 난해한 글을 혼자 번역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눈에 거슬리는 오역을 지적하기도 했다. 율리시즈>
그러나 이듬해 국제팬클럽에서 번역상을 따내더니 조이스 전문 학자가 있는 미국 털사대의 장학생 유학길을 뚫어 주었다. 6년 동안 조이스를 파고 든 그를 중앙대 영문과 교수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부패본’은 세월을 버텨내지 못했다. 1970년대 독일의 가블러 교수가 5,000여 개의 실수를 지적, 랜덤하우스에서 ‘가블러 개정판’을 펴냈던 것이다. 곧 출판사에 연락, 7년 여의 시간을 들여 옮겼다. 모두 3권(범우사). 이번에는 그 간 연구한 배경 지식 덕에 독자들의 수고가 훨씬 덜어졌다.
“처음의 산문식 번역을 함축적인 문장으로 고쳤죠. 시로도, 산문으로도 읽을 수 있는 조이스의 특성을 살리고 싶었어요.” 독자를 위해 주석서를 하나 내자고 출판사측에 제안했더니, 참고서 같다고 반대해 당장에는 뜻을 못 이뤘다. 곡절 끝에 본문 3권에 주석서 1권으로 나온, 별난 번역본은 연구자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1년에 500부 정도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제 세번째 문.
“자구의 정확한 해석과 관련, 조이스 연구자들이 미처 발견 못한 새 지식을 수백개 발견했거든요, 사실, 지금 나온 책도 완역이라 장담 못하지만….” 그러나 이번 역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에 힘입어 더욱 날개를 달게 된, 이른바 ‘조이스 산업’의 열기를 국내에 그대로 전달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번 판은 1933년 미국 울지 판사의 해금 판결문을 말미에 추가, 이 책의 역사적 의미를 선명히 보여준다. 판결문은 “이 책이 많은 부분에서 의심할 바 없이 약간 메스껍다 할지라도 그것이 최음제가 될 만한 경향은 어디에도 없다”며 출판을 허용했다.
“이번에는 언어의 실험, 시적 함축 등 기교적 면에 더욱 무게를 뒀어요. ‘mite’(진드기)와 ‘mighty’(힘 센)를 합성한 ‘mity’ 같은 조어는 ‘강(强)진드기’처럼 한자를 적극 원용했어요.
요즘 ‘불고기 햄버거’를 갖고 ‘불버거’라고 하는 것과도 비슷하겠죠.” 책을 내기 전 조이스의 말기 걸작 <피네건의 경야(經夜)> 를 국내 첫 번역한 게 조이스의 언어 실험에 바싹 밀착하게 해 준 계기였다. 피네건의>
길은 60년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에서 조이스를 본격 연구하며 번역에 착수하는 것으로 진작에 열렸다. 그는 “우리 작가도 풍성한 어휘를 구사하고 다양한 문체를 개발하며, 의식의 흐름 등 심리 소설에 보다 중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율리시즈> 때문에 아플 겨를이 없었다. 율리시즈>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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