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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우의 과학@영화.com] <13> 끈적한 감각의 복원-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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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우의 과학@영화.com] <13> 끈적한 감각의 복원-향수

입력
2007.03.26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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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뻗은 샹젤리제 거리와 에펠탑, 잘 정돈된 공원. 오늘날의 파리는 유럽의 중심 도시답게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런데, 이삼백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파리는 그렇게 깨끗한 도시가 아니었다.

하수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던 파리에는 오물이 가득했다. 더러운 것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파리 시내를 걷기위해서 하이힐이 필요했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했다.

하지만 하이힐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악취였다. 온갖 냄새가 진동하는 파리. 1738년, 그 도시에서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톰 튀크베어 감독, 2005)의 주인공 그르누이가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악취 가득한 생선 좌판 아래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그르누이. 영아 살인죄로 몰려 교수대에 달린 어미와 달리 그악스럽게 유모들의 젖에 매달려 생명을 잇는다. 냄새에 관한 한 비상한 감각을 지닌 그는 언어도 냄새와 연관시켜 배운다. 소년이 된 그르누이가 팔려간 곳은 무두장이의 공장.

파리의 온갖 냄새를 그리워하며 세월을 보낸다. 무두장이 일을 마치고 기억에 남길 냄새를 찾아 헤매던 그르누이는 거리에서 만난 여인의 향기를 취하려고 그녀를 죽이게 되지만 향기는 파리의 허공으로 사라진다. 완전한 향기를 잃은 그는 그 냄새를 다시 찾기 위해 인생을 바친다.

가죽을 배달하게 된 인연으로 알게 된 향수의 명장, 발디니의 도제가 된 그르누이. 그 밑에서 향수 제조법을 배우던 그는 더 완벽한 기술을 찾아서 발디니를 떠나 숲을 떠돌다 마침내 세계 향수의 중심지인 그라스에 닿는다. 그는 거기서 어떤 냄새도 잡아내어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처음 죽였던 여인의 향기를 재현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처녀들을 잇달아 죽인 그르누이. 연쇄 살인의 범인으로 잡혀 처형을 당하는 날, 그르누이를 증오하던 사람들이 그가 뿌린 향수에 취해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는 죽음은 면했지만 그들이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향수를 사랑한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실의에 빠져 파리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함께 지내게 된 부랑아들 사이에서 향수를 뿌렸는데, 그들은 그르누이를 진짜로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 때문에 그르누이를 찢어서 나누어 소유하고 그 육신을 먹어 치운다.

냄새에 예민할 뿐만 아니라 모든 기억과 사고를 냄새에 의존하는 그르누이는 확실히 보통 사람과 다르다. 동물학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포유류는 일반적으로 냄새에 예민한 후각동물이지만 사람이 속한 영장류는 눈으로 보는 것에 더 많이 의존하는 시각동물이다. 반대로 조류는 대부분 시각동물이지만 기러기나 도요새는 후각이 예민하다. 뱀이나 상어도 먹이나 짝을 찾거나 적과 친구를 구분할 때 예민한 후각에 많이 의존한다.

꿀벌이나 개미 등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도 그 행동에는 후각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배버들나방이나 누에나방의 수컷들은 수 ㎞ 떨어진 곳에 있는 암컷이 내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외부의 정보를 얻을 때 70% 가량을 시각에 의존한다고 하니 사람은 분명히 시각동물에 해당한다.

이런 측면에서 프랑스말로 개구리를 뜻하는 그르누이라는 이름은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양서류 중에서 도룡뇽은 후각동물인데 반해서 개구리는 시각동물이다.

생명체는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얻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사람의 경우, 우리가 오감이라고 부르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으로 주변의 환경을 감지하고 정보를 모아 행동을 결정한다.

시각, 청각, 촉각이 각각 빛, 소리, 압력이나 온도 등과 같은 물리적인 신호에 대해서 반응을 한다면 미각과 후각은 화학물질에 대해 반응을 한다. 화학물질이 직접 닿아야 반응한다는 점에서 미각과 후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서 좀 더 끈적하다고 할 수 있다.

냄새를 맡는 후세포를 자극하는 것은 냄새가 나는 물질에서 확산되어 나온 휘발성의 미립자이다. 이것이 공기에 섞여 콧속으로 들어와 점막의 점액질 속으로 녹아 들어가서 냄새 감각을 자극한다. 미립자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냄새를 풍기는 물체를 실제로 맛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의 경우, 미각과 후각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물고기의 경우, 맛을 수용하는 기관이 대개 머리의 표면에 분포하고 있고 메기 등에서는 수염 표면에도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녀석들은 먼 곳으로부터 물에 녹아 흘러오는 물질을 냄새 맡듯 맛볼 수 있다.

사람이 오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섯 가지 감각에 서로 다른 인식론적 지위를 부여해 왔고 그것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이 정보를 취하는 비율도 감각에 따라 다르다.

현대는 시각이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촉각이 더 믿을만한 감각이라 여겨졌던 때도 있다. 예수의 부활을 보고도 믿지 못했던 제자가 손으로 만져보고야 믿었던 시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요즈음은 시각적인 미디어 일색에서 멀티미디어의 등장에 따라 시각에 더해 청각이나 촉각과 같은 물리적인 신호에 반응하는 감각을 모두 이용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감각을 자극하는 물질과 직접 닿아야 느낄 수 있는 후각이나 미각은 아직까지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르누이에게 이런 환경은 무척이나 불만스러우리라. 하지만, <향수> 같은 이야기가 만인의 사랑을 받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끈적한 감각의 복권을 바라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르누이의 향수가 사람들을 무아지경에 빠지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 영화 속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나 냄새나 맛과 같은 감각이 여전히 강력하고 중요한 감각이라는 데는 다른 의견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물리적인 신호에 반응하는 감각뿐만 아니라 화학적인 신호에 반응하는 감각까지 만족시키는 멀티미디어 환경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생명체가 환경과 소통하는 방식

어떤 자극을 몸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복잡한 작용을 거쳐 중추신경에 전해졌을 때 그곳에서 일어나는 대응을 감각이라고 한다.

감각이 생기기 위해서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용기, 자극이 수용기에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감각기관, 자극에 의하여 수용기에 생긴 흥분을 중추신경에 전달하는 감각신경, 신호가 도달하는 대뇌의 표면이 모두 잘 작용해야 한다. 대뇌 표면의 신경세포가 신호를 받아서 흥분하면 감각이 생긴다.

감각의 종류에는 전자기파의 자극에 반응하는 시각, 소리진동에 반응하는 청각, 휘발성 물질에 반응하는 후각, 수용성 물질에 반응하는 미각, 압력에 반응하는 촉각, 온도에 반응하는 온각과 냉각, 그리고 어떤 종류이든 매우 강한 자극에 반응하는 통각이 있다.

촉각, 온각, 냉각, 통각을 묶어 피부 감각이라고 하고 다른 네 가지 감각과 더불어 오감이라 부른다. 현재는 이외에도 근육이나 힘줄에 분포된 심부감각, 내장에 분포된 내장감각, 직진 및 회전의 가속도에 반응하는 평형감각 등이 더 알려져 있다.

식물에도 감각이 있다. 빛이나 온도와 같은 외부의 자극을 느끼고 반응한다. 식물 속의 색소가 특정한 파장의 빛의 자극에 반응해서 성장의 방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식물은 세포 속에 있는 작은 녹말 주머니가 중력을 감지해서 뿌리가 아래로 자라고 가지가 위로 뻗도록 한다. 식충식물의 경우에는 무엇이 닿으면 접촉자극에 반응해서 곤충을 잡을 수 있도록 잎이나 꽃을 접는 감각모를 가지고 있다.

살아있는 생물체라면 모두 외부환경에 맞추어 반응을 하고 생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감각기관을 통해 밖과 소통하고 있다.

과학평론가ㆍ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주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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