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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의 나의 뮤지컬 이야기] <5> 뮤지컬 열정 아무도 못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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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의 나의 뮤지컬 이야기] <5> 뮤지컬 열정 아무도 못말려

입력
2007.03.26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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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4년 동안 뉴욕생활을 하고 돌아와 다시 연기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극단 ‘환 퍼포먼스’를 만들었다. 이전에 우리나라 극단이 대부분 동인제 형태였다면 ‘환 퍼포먼스’ 는 철저하게 프로듀서 시스템의 극단이었다.

배우도 없고 연출가도 없이 프로듀서 중심으로 작품이 기획되고, 작품에 필요한 연출 배우 스태프와 계약에 의해 프로덕션이 만들어지고, 공연이 끝나면 그 프로덕션은 해체되고 또 새로운 프로덕션이 만들어졌다.

나는 작품의 완성도나 철저한 마케팅을 위해서는 동인제보다는 보다 전문적이고 상업화한 프로듀서 시스템의 극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배우 스태프에게 계약서를 내밀자 당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런 제작형태를 낯설어 하기도 했다.

나는 ‘환 퍼포먼스’가 연극 공연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힘들어서 콘서트 기획과 음반제작도 함께 했다. 뉴욕에서 돌아와 보니 한국가요의 수준이 무척 높아져 있었으나 전문 콘서트 제작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변진섭 이승환 해바라기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식 등의 콘서트를 제작하고 강수지의 음반제작 등으로 ‘환 퍼포먼스’의 수익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95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첫 대형뮤지컬로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를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80년대 초에 극단 민중에서 고 추송웅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던 연극이었다. 뉴욕에서 돌아 왔을 때 우리 뮤지컬은 <아가씨와 건달들> 이 크게 성공을 하고 롯데극장을 중심으로 뮤지컬공연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작품도 많지 않았고 브로드웨이의 뮤지컬과 비교하면 매우 빈약한 상태였다.

또 대부분의 공연들이 해외뮤지컬의 번역 작품이었다.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창작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던 나는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의 희곡을 뮤지컬로 각색해 친구인 김수철에게 작곡을 맡기고, 강영걸 선배에게 연출을 부탁해서 제작을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기업의 협찬을 구해서 제작비를 마련했지만 지금처럼 전문 뮤지컬 배우가 많지 않아서 캐스팅도 무척 힘들었다. 더구나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는지라 흥행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결국 탈렌트 가수 배우가 총동원된 캐스팅이었다. 최수종 엄정화를 주인공으로 김성옥 김길호 이정섭 최형인 양희경 성병숙 이재희 권해효 정종준 이인철 이정화 이장훈, 가수 권인하 등이 출연했다.

특히 노력을 기울인 것이 음향이었다. 예전에 뮤지컬 <루브> 를 공연하면서 무선마이크 사고로 곤욕을 치뤘던 나는 이번 공연만큼은 좋은 음향을 만들고 싶었다. 결국 일본까지 가서 뮤지컬 극단 <사계> 의 음향장비를 빌려오고 뮤지컬 사운드 디자이너 사네요시 에이치를 데려와서 공연에 참여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설픈 구석이 많은 공연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만든 뮤지컬 공연이었다.

PMC 대표ㆍ명지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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