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1957년 3월 25일 이탈리아 로마에 유럽 6개국 지도자들이 모여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을 골자로 하는 ‘로마 조약’에 서명한 지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
이를 기념해 EU 회원국 정상들은 25일 순회의장국인 독일에 모여 ‘베를린 선언’을 발표한다. 그러나 휘날리는 EU 깃발, 샴페인과 케이크 커팅은 유럽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그들만의 축제’일 뿐이다. EU 가입 후 ‘민생’은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EU는 ‘성공한 실험’이다. EU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해 중세 이후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유럽에 평화를 가져왔다. 국제사회에서 무역과 원조 등을 통해 외교적 영향력도 키웠다.
그러나 돋보기로 본 유럽인들의 얼굴은 우울하다. 동유럽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밀려오고 세계화의 진전으로 수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서유럽 국가들은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서유럽 6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EU 가입 후 생활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25%에 지나지 않았고, 44%가 전보다 ‘나빠졌다’고 대답했다.
‘EU 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 ‘단일 시장’을 든 사람이 31%로 가장 많았지만 ‘관료주의’라고 답한 사람도 20%나 됐다. 신문은 “유럽통합의 꿈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브뤼셀의 EU 본부는 고차원적인 얘기에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실제 유럽인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내놓으라고 지적했다.
EU 가입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은 서유럽뿐 아니다. 서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은 부국과 빈국 사이의 엄청난 경제력 차이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헝가리의 경우 집권 사회당이 유로존 가입을 위해 무리하게 경제 상황을 왜곡, 발표한 것이 드러나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유럽 통합’이라는 애초의 목표도 절반만 달성했다. 경제적으로 단일 시장, (영국을 제외한) 단일 통화 구현에 성공했고 유로화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제 통화로 부상했다.
지난해 EU 25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14조2,000억달러로 미국보다 많으며 전세계 총생산의 30%를 차지한다. 22일에는 미국과 유럽 사이를 운행하는 항공노선을 완전 개방하는 항공자유화 협정(Open Skies)에 EU 장관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통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유럽통합군의 창설과 유럽헌법에 대한 반대여론이 많고, 회원국 간의 역사적 갈등과 민족주의적 사고 등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 독일은 베를린 선언에 2005년 부결된 유럽헌법을 부활시키는 문제를 포함시키고자 애쓰고 있지만 폴란드 등의 반대도 만만치 않아 전망은 불투명하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