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오랜만에 편집 일을 하는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지난 추억을 떠올리다가 그 친구는 우리 집에 책이 많던 사실을 부러워했다며, 그래서 결국 내가 ‘책장이’가 되었다고 했다.
사실 지금 떠올려 보면 그 당시의 우리 집 서가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으나 책이 귀했던 시절이라 그 친구로서는 부러웠던 모양이다. 여하튼 내 책과의 인연은 그 서가에서부터 시작했다. 대부분 부모님이 사다 놓은 그 서가에서 여가의 재미를 위해 수준에 맞지 않은 그 책들을 탐닉했다.
용돈이란 것을 받기 시작하면서 차츰 내 서가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용돈의 빈약함은 청계천의 헌 책방을 뒤지는 일을 감수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조금은 대담하게 참고서 사라고 준 돈을 몽땅 내가 읽고 싶은 책으로 바꾸어 오면서 차츰 서가를 쌓아갔다.
종로서적의 서가를 서점 직원보다 더 꿰뚫고, 어디 가면 정가 인상 딱지가 붙지 않은 책을 살 수 있는지 알았으며, 시내에서 책을 보고 학교 주변 단골서점에서 할인해 샀고, 청계천 책 더미에서 월북 작가 정지용의 시집을 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면서 서가는 한껏 자라났다. 아마 그 책 욕심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지금쯤 책에 깔려 지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욕심의 끝은 예상보다 금세 왔다. 군대에 가게 되자 가득한 책을 이고 갈 수 없으며, 그 때 3년은 영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이사를 하면서 끙끙댔던 기억 때문에 이 책을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서가를 분해하기로 하고 친구들과 후배, 친척 동생들을 불러 마음껏 책을 가져가게 했다.
제대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서가가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 뒤로는 책 소유의 대한 욕심을 접었다. 읽고 나면 필요한 사람이 달라면 주고, 이사를 가게 되면 미련 없이 책을 버린다. 어쩌다 책이 직업이 되었고 이제는 내 서가 아닌 세상에다 책을 쌓는다. 가끔은 이 책이 세상에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장인용ㆍ지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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