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론을 놓고 재계 및 민간 경제연구소와 정부가 거센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당장 외환 위기와 같은 날벼락이 닥칠 지 여부에 대한 공방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중국과 일본에 치여 먹고 살 게 없다’는 고질적 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체감 정도를 둘러싼 논란이다.
재계는 “당장 5~6년 뒤 혼란이 닥칠 것”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경제 부처 고위 관료들은 잇따라 “공감은 하지만 호들갑 떤다고 한국 경제에 도움될게 없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분명한 것은 거시지표나 금융시스템이 쟁점은 아니라는 점이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1차관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단기적으로 금융시장 등 시스템 불안에 따른 위기론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계도 이 점에 대해 동의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당장의 거시경제나 금융시장에 위기가 올 가능성은 없으며, 재계의 위기론도 이를 염두에 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쟁점은 수년 후엔 한국경제가 먹고 살 게 없어질 텐데, 준비가 너무 안일하지 않냐는 것이다. 이번 공방도 출발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던진 두 가지 화두, 즉 “정신 안 차리면 5~6년 뒤 혼란 온다”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는 발언이다.
이 발언 직후 민간 경제연구소는 잇따라 보고서를 통해 성장잠재력 위기를 경고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월 “우리 기업이 중국과 일본 기업에 비해 기술혁신, 생산성이 저조해 샌드위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월 “2010년 이동통신장비, 디지털TV, 철강에서 중국에 역전될 것”이라고 분석했고, 현대경제연구원도 22일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이 지속되면 10년 뒤에도 선진국에 진입 못한다”고 경고했다.
기업들이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니 국가 차원에서 활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정부는 일부 언론이 이를 과대 포장하면서 정치 공세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최근 국정브리핑 기고에서 “우려가 지나쳐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도 22일 국정브리핑 기고에서 “중국 선박의 수주량이 급증했다고 우리 조선이 중국에 추월 당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성장잠재력이 단칼에 확충될 수 없는 만큼 대신 이런 위기의식을 건설적으로 돌리자는 입장이다. 조 국장은 “경제위기론이 자기 폄하로 발전해서는 안되며 사회적 중지를 모으는데 보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최근의 재계와 정부간 공방은 성장잠재력 고갈이라는 문제에 공감하면서도, 위기 체감 정도와 해결 강도에서 인식차를 드러낸 셈이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냐 아니냐와 같은 소모적 논쟁은 피해야 한다”며 “무엇으로 먹고 살 지, 대안 중심의 생산적 논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