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라는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험난한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
22일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주선회 헌법재판관은 퇴임사에서 헌재를 견제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을 부정하지 않았다. ‘헌재에 의해 통제를 받는 국가기관’과 ‘통제기관인 헌재’사이에 숙명적 대치 상황이 점점 가시화하고 있다는 게 그의 현실 진단이었다.
주 재판관은 ‘헌재 견제 세력’의 의미를 파고들자 “미국도 초기 연방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권을 만드느라 갈등이 심했고, 모든 나라가 다 그렇다”며 헌재와 다른 기관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조정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홀가분하다는 말로 퇴임사를 대신했다. “보통 사람들은 퇴임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는데 워낙 굵직한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정말 홀가분하다.” 그는 재임시절 말 그대로 격량의 시기를 보냈다. 그런 만큼 헌재에는 어느 때보다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그가 주심을 맡았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은 그에게나 헌재, 그리고 국민들 모두에게 두고두고 기억될 사건이었다. 지난해 전효숙 당시 재판관이 사임 후 헌재 소장으로 지명되면서 위헌 시비가 일어 결국 낙마했을 때는 소장 권한 대행을 맡아 헌재를 추스르는 역할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탄핵 심판 때였다. 힘이 들어서 수술까지 받았다. 두 번째가 소장 대행할 때였는데 전 재판관도 개인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고 헌재의 위상도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폐 혈관에 문제가 있어 치료를 받았던 주 재판관은 탄핵 사건 선고 며칠 뒤 왼쪽 폐의 절반 가량을 잘라냈다. 지난해 신문법 헌법소원 사건 주심을 맡으며 어깨 인대가 파열된 것까지 포함하면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주 재판관은“검사 생활을 포함 38년이나 조직 생활을 했다”며 “당분간 휴식한 뒤 5월 말쯤 서울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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