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6자회담이 세계적 코미디가 됐다. 6자 당사국들은 2ㆍ13합의에 따른 초기조치 이행을 점검하고, 이후 단계를 논의하기 위해 19일 중국 베이징(北京)에 모였으나 22일까지 나흘 간 협상다운 협상 물론,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휴회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초강대국이 대거 참여하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회담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전례가 없다.
원인은 어처구니 없게도 미측이 반환키로 약속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자금 2,500만달러가 북한 계좌에 들어오지 않은, 지극히 기술적 문제였다. 한국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문제”라며 황당함을 토로했다.
북측을 제외한 5자 당사국 대표들은 BDA 2,500만달러의 이체 지연을 이유로 회담 개막 이후 협상을 거부해 온 북측의 자세에 어이없어 하면서 회담 폐막(21일)을 하루 이틀 연장하기로 했지만 22일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의장국인 중국이 수석대표회의 개최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대표단을 부른 자리에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불참했다. 역시 “돈을 먼저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북측 태도에 인내심이 고갈됐는지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날 오후 베이징을 떠났다. 김 부상도 BDA 자금이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사관을 출발, 오후 2시45분께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했다. 각국 대표단은 북측 실무진이 떠나지 않았음을 들어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김 부상은 결국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으로 갔다.
6자 당사국은 이날 오후 수석대표회의에서 “초기조치 이행공약을 재확인하고 다음단계 행동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가장 이른 기회에 회담을 재개할 것”이라는 초라한 의장성명을 내놓고 회담을 무기한 휴회해야 했다.
회담이 공전되는 가운데 바빴던 인사들은 BDA 송금문제를 풀기 위해 긴급 수혈된 한ㆍ중ㆍ미 금융 전문가들뿐이었다. 20일부터 투입된 이들은 이른 시일 내에 문제를 풀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다.
특히 북측이 지정한 중국은행이 대외신인도 하락 등을 이유로 BDA 북한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문제를 푸는 게 과제였다. 해결방안으로 외환거래가 자유로운 홍콩에 있는 한국계 또는 미국계 은행에 북측 계좌를 임시 개설하고 인출토록 하는 우회 송금방식 등이 추진됐다. 중국은행이 북한 자금을 예치시킬 수는 없지만 중계는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걸려 회담을 지속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들은 앞으로 수일 안에 이런 방안으로 문제를 풀기로 합의하는 데 그쳤다. 또 미측은 문제 해결을 위해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조만간 중국으로 다시 보내기로 했다. 예금주의 이체신청서를 모으는 북측 작업은 22일 오전 중 거의 완료됐다.
이날 미국에서는 북측의 버티기에 대해 대북 협상 지지자들조차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고, BDA 북측 자금 동결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6자회담이 다시 ‘시계제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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