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바라보는 언론의 반응은 좀 복잡하다. 좋아하는 선수가 자살 골을 넣었을 때의 애석함, 또는 배신감이 깔려있다. 지난 19일 그의 탈당선언 이후 신문에서 이런 글들을 읽었다.
'손학규는 정치부기자 여론조사에서 늘 대통령감 1위였다. 그는 기자들을 잘 만나주지도 않고, 엉뚱한 질문을 하면 교수가 학생 대하듯 호통도 친다. 그런데도 많은 기자들이 호감을 가졌던 것은 개혁성에 대한 기대,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바쳤던 인간적 면모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기자들은 혼란스럽다…'
● 지지 언론인의 하나였던 나
'합리적 지도력, 사회적 중간층의 의사를 존중하는 중도노선, 실용주의적 개혁노선, 교양과 정서적 안정 등의 기준을 갖춘 정치인으로 손씨를 지지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사람을 잘못 보았다는 자책이 밀려온다…'
언론인들이 부담 없이 한 대선 후보에 대한 호감과 지지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2위를 다투는 후보가 아니고 저만큼 떨어져서 뛰고 있는 3위의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로서는 3위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만큼 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기자들이 1위로 꼽는 좋은 대통령감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5% 내외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손씨는 탈당이라는 극약처방으로 탈출구를 뚫고자 했다. 다수의 평가는 손씨가 죽음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얌전하게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하여 구색을 갖춰주고,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를 돕는다면 다음 정권에서 총리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당을 뛰쳐나가 승산 없는 모험을 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손씨 자신도 탈당 선언에서 "이 길이 죽음의 길인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모든 가능성과 기득권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잔당들과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들이 주인행세를 하며 대한민국의 미래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난다"고 말했다.
지금 손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죽음의 길'을 가려 하고 있다. 만류도 비난도 이젠 소용이 없다. 그를 지지하는 언론인 중의 하나였던 내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철저하게 죽고 밀알처럼 썩으라"는 것이다. 이왕 죽을 바에는 의미 있는 죽음, 이 나라의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죽음을 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믿든 말든 나는 일단 좋은 쪽으로 그를 해석해보고 싶다. 지금 그는 대학시절 운동권에 뛰어들던 각오로 광야에 섰을 것이다. 그는 민심대장정에서 새 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 각성이 기득권을 버리게 했을 것이다.
지난 14년간 장관, 3선 의원, 도지사를 지낸 사람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은 지금 기득권을 버리기가 쉬웠겠는가.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당을 박차고 광야로 나갈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의 말처럼 '불쏘시개'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뛰려는 사람은 부족하고, 드높은 주장은 있지만 겸양은 찾기 힘든 새로운 정치세력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은 한나라당을 진보정당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면 그는 이제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라 '운동가'이다.
● 철저하게 죽고 밀알처럼 썩으라
탈당 전후 그의 정치적 제스처는 매우 구식이었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왜 절을 찾아야 하는지, 새 출발을 선언하는 마당에 무슨 눈물인지, 기득권을 포기하고 광야로 나선다는 사람이 현충원에 가서 분향은 왜 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과도한 정치적 제스처는 이제 국민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다시 '운동가'로 돌아간 손학규씨의 건투를 빈다. 철저하게 죽으라는 말은 악담이 아니다. 죽음의 각오 없이 어떻게 운동가의 꿈을 이루겠는가.
장명수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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