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해외출장으로 3일 동안 집을 비운다. 시간은 충분하다. ‘게으른 조력자’가 사라진 덕분에 고민의 시간도 필요 없게 됐다. 곧 물건들이 도착한다. ‘흔적’이 남지 않도록 마룻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커튼을 걷어냈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남편의 표정이 궁금하다. 예상하지 못한 아내의 도발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놀래도 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변화를 알아챌 때쯤 이미 페인트는 딱딱하게 말라있을 테니….
환기 걱정없는 벽지 페인팅
결혼 5년차 직장인 주부 황모(31)씨. 그녀는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난 가을부터 수 개월간 고민해온 실내 인테리어 문제를 막 해결하려는 참이다.
새롭게 도배하기에는 깨끗하고 그냥 두자니 특색이 전혀 없는 벽면을 놓고 갈등해온 그녀가 막 고민을 끝낸 순간이다. 황씨가 선택한 해결책은 바로 ‘벽지 페인팅’. 번거롭고 냄새 나고 머리 아픈 페인트칠을 고른 이유가 무엇일까.
벽지에 그대로 페인트를 바른다(?). 페인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일반인(인테리어에 무지한 기자와 같은 사람)에겐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작업이다. 새집증후군이 생길까 싶어 각종 친환경 소재로 인테리어를 하는 마당에 시너(thinner) 냄새로 지끈거리는 페인트를 실내에 칠한다니 영 마뜩치 않다. 잘못 칠해서 옷에 묻기라도 하면 지워지지도 않을텐데….
그러나 페인트도 진화한다. 아직 환경기준치로 완벽하게 무해한 국내 제품이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독일과 미국에서 생산되어 수입되는 페인트들은 판매상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꿀꺽꿀꺽 마셔도 설사 한번만 하면 별 문제 없을’ 정도로 독성이 제거되어 있다(그렇다고 몸소 시험하지는 마시라, ‘식용’ 페인트는 아니므로). 국내 페인트 업체들도 독성을 최소화하고 용해제를 시너 대신 물로 쓴 수용성 벽지전용 페인트들을 출시하고 있어 웬만한 친환경 벽지보다 인체에 무해하다. 시너를 넣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페인트 특유의 냄새도 없다.
황씨는 “문을 닫아놓고 벽지에 페인트를 발라도 냄새가 전혀 나지 않기 때문에 환기가 어려운 겨울철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실크벽지에는 페인팅 'NO'
이정도면 페인트를 실내에서 칠했을 때 우려되는 첫번째 문제인 냄새와 환기는 해결된 셈. 다음은 번거로움이라는 숙제를 풀어볼 순서. 실내에 칠하는 페인트는 수성을 쓴다.
시너가 들어간 유성페인트는 광이 난다는 장점 외에는 투박하고 손질이 어렵고 냄새가 심해 벽지에 바를 수 없다. 벽지용 수성페인트는 바를 때 튀지도 흐르지도 않는 적정한 점성을 유지해 주부들이 별 어려움 없이 바를 수 있다.
실내 페인팅 등 각종 리폼(reform) 강좌를 섭렵한 주부 이덕애(49)씨는 “실내 인테리어 용 페인트들의 종류도 많고 소형 포장 용기들이 나와 있어서 주부들이 사용하는데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인터넷 페인트 판매점이나 대형 마트에서는 주부들이 딱 적당량의 페인트를 구입해 남김없이 쓸 수 있도록 1ℓ의 소형 포장제품을 판다.
벽지에 페인트를 바를 때 그래도 조심해야 할 점 하나. B&Q 구로점 김민씨는 “일반적인 종이 벽지 위에는 어떤 페인트를 발라도 간편하게 칠할 수 있지만 고가의 실크벽지에는 페인트를 바르면 큰일 난다” 며 “실크벽지는 전면에 접착제를 바르는 종이벽지와 달리 각 변의 끄트머리에만 본드를 발라서 벽에 붙이기 때문에 페인트를 그 위에 칠하면 무게를 못 이겨내고 벽지 자체가 떨어져 버린다”고 설명했다.
나만의 포인트로 개성 표현
벽지 페인팅을 선택하는 주부들은 하나같이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찍어져 나오는 벽지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이덕애씨는 “벽면 모두를 한가지 색으로 칠해서 손쉽게 인테리어를 바꾸기도 하지만 역시 벽지 페인팅의 별미는 칠하는 사람 마음대로 ‘포인트’를 줄 수 있다는 것” 이라며 “원하는 그림을 그려 넣거나 입체적 질감을 주는 페인트를 덧칠해서 인테리어의 강약을 나타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페인트를 판매하는 양해엽씨는 “파란색으로 방 벽을 칠한 딸아이가 흰색 페인트로 덧칠을 해 구름을 그려넣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며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려는 젊은 주부들에게 벽지 페인팅은 구미에 딱 맞는 인테리어 방법” 이라고 장점을 소개한다.
벽지 페인팅은 따분한 실내공간을 손쉽게 화사한 이미지로 바꿔주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실증이 난 벽지는 그대로 스케치북이 되고 페인트 롤러는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는 붓이 된다.
붓질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싶으면 그냥 다른 색 페인트로 덮어 씌우면 그만이다(벽지에 바르는 페인트는 대체로 벽의 색이 비치지 않는 오버코팅 방식이다). 이른 아침 시작하면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변신을 마무리 할 수 있다. 남편의 ‘불평’이 걱정된다면 이렇게 거짓말하자. “한 번 칠한 페인트는 지울 수 없어요.”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도구만 갖춰지면 누구나‘쓱싹’
벽지 페인팅을 배우기는 의외로 쉽다. 별로 배울‘기술’이없는 이유로 따로 페인팅을 가르쳐주는 문화강좌나 업체의 무료교실이 흔하지 않을 정도다.
도구만 갖춰지면 다른 집안일보다 쉽게 시도할 수 있는 게 벽지 페인팅의 매력이다.
페인팅에 앞서 칠을 할 벽면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측량하는 게 필요하다. 페인트를 필요 이상으로 구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B&Q 김민씨는“1리터한통의 페인트로 대략 방문 1개 넓이를 칠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페인트의 양을 정했다면 다음은 실제로 벽지 페인팅에 필요한 페인트와 각종 장비를 구입할 차례. 직접 페인트 전문점이나 대형 마트의DIY코너를 방문해 사거나 인터넷 전문몰을 통해 구매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는 페인팅을 잘 아는 직원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고 직접 색을 보며 페인트를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벽지 페인팅에 필요한 물품이‘원스톱’으로 구비되어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게 단점이다. 인터넷에선 초보자들을 위한 일종의‘패키지’ 상품들이 잘 꾸려져 있고 접하기 힘든 수입제품의 선택폭이 상대적으로 넓지만 자신이 직접 고르기 보다 업체의 추천 품목을 사게 된다는 점도 무시 못한다.
DIY코너든 인터넷몰이든 조색(造色)서비스가 가능한 곳에서 페인트를 구입하도록 하자. 조색서비스는 사용자가 원하는 색을 기본색과의 조합을 통해 직접 샘플로 미리 만들어 보는 것으로 페인트사가 기본으로 제공하는 색보다좀‘튀는’색을 고르고 싶다면 반드시 필요한 단계이다.
페인트 외에 꼭 구입할 것으론 롤러, 붓, 페인트트레이(페인트를 붓고 롤러로 적시는틀), 마스킹 테이프(몰딩 등에 페인트가 묻지 않도록 가리는종이테이프) 등이 있다. 초보자는 이들 제품을 묶어서 저렴하게 파는 패키지 상품을 고르는게 도움이 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벽지 페인팅 단계
1 벽지가 종이인지 실크인지를 확인한다.(실크벽지는 페인팅 불가)
2 페인트를 바를 면적을 대략 파악한다.(방문 1개 넓이를 칠하는데 1리터 필요)
3 인터넷몰이나 DIY매장을 찾아 페인트를 고른다.(조색 서비스가 되는 곳을 되도록 선택한다)
4 페인트와 필요물품을 구입한다(매장에서 페인팅 강좌 등을 제공하는지 알아보고 정보를 얻는다. 롤러는 수성용인지 확인하고 붓은 잔털이 빠지는지 확인한다)
5 페인트를 칠하기 앞서 커튼을 걷어내고 바닥은 신문지나 비닐로 덮어 놓는다(수성페인트가 묻으면 바로 물로 닦으면 대부분 지워진다)
6 페인트를 트레이에 붓고 롤러로 충분히 적신 후 벽지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한다.(넓은 곳은 롤러로 칠하고 변두리는 붓으로 마무리한다)
7 페인트가 마른 후 포인트를 주기 위해 덧그림을 칠할 수 있다.
8 페인팅 도중 자리를 비울 경우 롤러 등 도구를 물통에 넣어둔다.
그렇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어 사용하기 힘들어진다.
●도움말 B&Q 구로점, 리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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