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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착한' 김주하 앵커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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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착한' 김주하 앵커는 싫다

입력
2007.03.2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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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드디어 한국 지상파TV의 9시 뉴스에도 여성 단독앵커가 등장했다. 주말 MBC <뉴스데스크> 의 김주하 앵커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방송계에는 한미FTA협상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방송시장개방문제뿐 아니라 지난 몇 년을 끌어온 IPTV를 비롯한 방송통신 융합의 문제 등 여러 주요 이슈들이 있지만,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 여성 단독앵커의 등장이 갖는 의미 역시 간단치 않아 보인다.

TV뉴스에서 앵커의 역할은 왜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앵커는 기자나 아나운서의 역할을 뛰어넘는다. 소위 ‘객관적인’ 뉴스를 충실하게 전달하거나, 프롬터(prompter)만 응시하며 자신에게 넘겨진 원고만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내는 것이 앵커의 일이라면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방송기자나 아나운서 누구나 별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앵커(anchor)라 부르는 이유는, 문자 그대로 그가 뉴스의 의미를 ‘정박(anchor)’시키는 파워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해도 뉴스라는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수용자들에 의해 비교적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려있는 텍스트다.

어떤 텍스트가 갖는 의미의 지평이란 것이 물론 무한대로 열려있는 것은 아니고, 수용자들은 몇 가지 해석의 가능성 중에서 궁극적으로 한 가지를 택함으로써 그 뉴스를 자기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앵커는 상당한 결정력을 행사한다.

예를 들면 30~40분간의 뉴스진행을 마감하며 앵커가 하는 ‘클로징 멘트’는 뉴스를 그냥 끝내기가 아쉬워 한두 마디 첨언하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다. ‘클로징 멘트’는 그 날 방송된 특정 뉴스꼭지에 대해 혹은 그 날 하루의 전체 뉴스에 대해 시청자인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하나의 틀(frame)을 제공함으로써 뉴스의 의미를 특정한 방향으로 정박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프닝 멘트’도 마찬가지인데, 뉴스구성방식뿐 아니라 각각의 뉴스꼭지 앞뒤에 앵커가 붙이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제스처 하나가 뉘앙스 있는 커뮤니케이션(nuanced communication) 행위로서 뉴스의 의미를 특정한 방향으로 결정짓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뉴스에서 앵커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함을 고려해 볼 때, 그간 한국 TV뉴스의 역사에서 중심이 아닌 주변부적인 역할만 해왔던 여성앵커가 단독으로 뉴스진행을 맡은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취재뿐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인 목소리를 담아 보도할 수 있게 된 김주하 앵커에게 여기자들을 비롯한 전체 여성들이 거는 기대는 사뭇 크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19일자 <미디어 오늘> 의 기사에서 보듯, 여성단독앵커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라는 것이 앵커의 모습을 잡는 카메라 샷, 앵커의 앉는 자세나 손 위치, 의상색깔 같은 단순한 포맷이나 이미지 상의 변화라면 이것은 너무나 허탈한 일이며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여성단독앵커 등장의 의미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지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필자는 무엇보다 김주하 앵커가 우리사회 주요 아젠다에 대해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 뉴스 앵커로서 적극 개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시청자들이 최초의 여성단독앵커에게 기대하는 것은 연성화한, ‘주말용 뉴스’의 전달이 아니다.

예를 들면, 시청자들은 방송시장개방과 관련하여 미국측 FTA협상대표를 불러내어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고, 주무부서인 방송위원회 관계자도 불러내서 도대체 정부차원의 대책은 마련하고 있는지 따져 묻는, 남성앵커 못지않은 전문 인터뷰어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또 방통융합과 관련해서는 방관자적인 뉴스전달이 아니라 방송위원장, 정통부장관, 국회의원들을 불러내 인터뷰함으로써 그들의 밥그릇 싸움의 본질을 확연히 드러내주는, 그런 속시원한 뉴스의 전달자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주하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18일 방송에서처럼 “(앞으로) 기분 좋은 뉴스만 전했으며 좋겠다”는 그런 ‘착한’ 멘트가 아니라, 더 뚜렷이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간 멘트로 하루 빨리 바뀌기를 기대한다.

김영찬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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