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구구절절 옳은 얘기도 참 야박하게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20일 저녁 농림부 업무보고에서 노 대통령이 연간 16조원에 달하는 정부의 농업 지원과 관련해 "염치도 없다. 한미FTA 하면 또 돈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로 한국 농업 현실을 비판한데 대한 소감이다.
노 대통령은 "농업도 시장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자꾸 수지 안 맞아도 살려내라는 기본 전제가 농업에 깔려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경쟁력 없는 농업 분야를 살리려고 정부가 지금처럼 계속 퍼줄 수만은 없다.
그 돈을 조금만 줄이면 더 많은 도시 실업자를 구제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쇠고기 수입에 대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딱 한마디로, FTA 하면 광우병 소 들어온다고 플래카드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며 "진보적 정치인들이 정직하지 않은 투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이런 플래카드는 FTA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질 좋고 값싼 농축산물을 수입하면 도시 서민의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측면은 사라진다.
그러나 대통령은 평론가가 아니다. 농민들의 고통을 객관화시켜 떼어놓은 채, 한국 농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평가할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미FTA 하면 또 돈 내놓으라고 하고, 한중FTA 하면 또 돈 내놓으라고 하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는 비판은 모질게 마음 먹은 평론가나 할 말이지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그것도 한미FTA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농민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상황에서, 그것도 직접적인 당사자인 200여명의 농어업 지도자들을 앞에 두고서 말이다. 대통령이라면 야박함이 필요한 정책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풀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경제부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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