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너무 속도가 빨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악의 축'북한의 고위 인사가 미국 심장부 뉴욕에서 초특급 경호를 받으며 뮤지컬을 관람했다.
작년에만 해도 핵실험과 대북 제재를 주고받던 북ㆍ미는 이제 관계 정상화를 향한 진지한 논의에 착수했다. 6자회담과 별개의 정당한 법집행이라며 BDA 해제 불가를 고수했던 미국 재무부도 북한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판단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반세기 이상 지속해온 북ㆍ미 적대관계가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종전선언으로 정치적 전환을 이룰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다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북한 역시 기일 안에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 및 감시 허용에 적극적 의지를 보이고 나섰다.
● 급물살 타는 주변 정세
일각의 신중론과 경계심이 온존하지만, 2007년 봄이 한반도의 해빙으로 이어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힘의 관점에서 선악의 구도에 익숙해 있던 일부 사람들은 도저히 타협할 것 같지 않던 북ㆍ미가 대화와 협상에 나서고, 한반도가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믿지 못하거나 수긍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유수 일간지의 보수 논객은 정세 판단에 실패한 나머지 미국을 믿을 수 없다며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만큼 지금의 한반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급변은 금년 한국 대선에도 불가불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 아직까지도 2007년 대선의 최대 화두는 경제다.
유력 야당 후보의 가공할 지지율도 현 정부에 대한 반감과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결합한 기형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급물살이 지속될 경우, 연말 대선에서 전선을 명확하게 가를 또 하나의 영역이 등장할 것이다. 바로 핵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통일 정책이다.
막강 지지율을 근거로 그 동안 '부자 몸조심'에 머물러 있던 야당마저도 대북정책의 방향 재검토에 나섰다. 지금의 대선 판세가 그대로 지속되기만을 바라겠지만,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탈 경우 한 순간에 판세가 바뀔 수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실제 2007년 대선은 지금 겪고 있는 격동의 한반도 정세와 상관 없이도 본래부터 외교안보 정책과 비전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했다. 경제 이슈와 국내정치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외교와 안보 영역에서 중대한 판단을 필요로 해야 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향후 5년의 시기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통일에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금년의 한반도 급변이 문제가 아니다. 다음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너무도 중요하고 결정적인 외교안보적 결정이 내려져야 할지 모른다.
북핵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향후 북한의 변화와 통일의 프로세스는 곧 다가올 현실이 될 것이며, 탈냉전 이후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동북아 질서의 유동적 상황 역시 앞으로 대한민국이 헤쳐 나가야 할 파고이다.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는 한ㆍ미관계의 포괄적 발전방향 역시 향후 5년이 결정적 시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 리더십에 시대정신 담겨
그 동안 한국 역사에서 대통령 선거는 그 시대의 가장 필요로 하는 소명에 부합한 결과를 항상 산출해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과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및 근대화는 독재와 인권탄압의 오점 속에서도 이들의 최고 리더십을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게 하는 당시의 시대적 가치였다.
전두환씨의 불법 찬탈을 제외하면 노태우 시기의 과도기를 거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절차적 민주화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완성 역시 지금까지 역사발전의 경로에 따라 최고 리더십에 반영된 합당한 시대정신이었다.
2007년 대선의 시대적 소명은 향후 한반도에 불어 닥칠 격랑을 뚫고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안전하고 평화롭고 번영되게 이끌고 갈 수 있는 외교 안보적 혜안과 비전의 제시일 것이다. 경제만이 판단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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