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느낌. 수산시장 바닥, 커다란 고무통에서 막 건져낸 우렁쉥이나 해삼을 이빨로 끊어 먹는 맛. 재일동포 감독 최양일(58)의 영화는 그런 맛이 난다.
비릿하고 콧등을 시큰하게 만드는 자극, 어쩔 수 없이 매력적인 맛이다. 22일 개봉하는 <수> 도 그런 매력으로 가득하다. 한국 땅에서 한국의 배우와 스태프를 데리고 만들었지만, 찐득한 피와 거친 호흡으로 가득찬 최양일의 스타일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수>
“하드보일드? 나에겐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어요.” 최양일은 자신의 영화를 ‘하드보일드 액션’으로 규정짓는 영화계의 인식을 단호히 거부했다. 어떠한 수식도 거부한 채 폭력의 리얼리티로 가득한 그의 영화는 사전적 의미의 하드보일드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이런 인식을 거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최양일은 “장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영화를 찍으면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의식의 미묘한 변화가 쌓인 결과”라고 스스로의 스타일을 설명했다.
1960년대 말, 조총련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명 ‘시다’로 영화판에 뛰어든 된 뒤 40년 가까이 몸으로 영화를 체득한 그답다. 그는 “내 영화의 거친 스타일은 무슨 ‘이즘(-ism)’을 동경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레 몸에 밴 영화적 언어일 뿐”이라고 정리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영화에는 ‘먹물’의 냄새 대신 ‘짬밥’의 힘이 느껴진다. 마치 임권택 감독의 영화처럼, 책상머리에 앉은 평론가의 잣대를 비웃는 장인(匠人)의 꼬장꼬장함이 스며 있다. 그러나 이런 고집이 이토 준지(伊藤潤二)의 호러만화를 연상케 하는 B급 문화의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최양일은 이런 지적에 대해 “그런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내 영화가 항상 격식 있게 보이기를 바라는데, 그게 꼭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명치 아래로 천천히 회칼을 집어 넣거나 낫으로 종아리를 찍는 것과 같은 폭력적 이미지들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영화적 의미는 어떤 것일까. 최양일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을 알고 싶어 영화를 만든다”며 “폭력성도 인간이란 존재의 보편적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리한 논리보다 순간순간의 감정이다. 영화작업은 답이 없는 물음을 영원히 반복하는 일이며 그런 과정이 결국 삶, 그리고 영화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첫 영화를 끝낸 감회는 어땠을까.
최양일은 “젊은 영화인들의 도전의식과 열정은 높이 살 만하다”며 “몸을 아끼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련한 스태프와의 작업은 감동적이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촬영 도중에 스태프가 퇴직해 버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주관만 내세우는 등 황당한 경험도 많았다”고도 털어놨다.
최양일은 제작과정에서 스텝이나 배우들이 절대로 모니터를 볼 수 없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감독을 믿으면 되지, 성급하게 그것을 확인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찍어내는 것보다 충분한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후반 작업을 하지 않는 등 아날로그 작업을 무시하는 제작습관은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한국영화계의 제작관행을 지적하기도 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