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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타인의 삶 '괜찮은 관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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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타인의 삶 '괜찮은 관음증?'

입력
2007.03.2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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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관음증’ ‘훔쳐보기’라고 하면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공중화장실 벽에 난 구멍.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몰카. 옆집 누나의 벗은 모습 혹은 싸이코 같은 으스스한 영화들.’ 그러나 일단 스크린 앞에 앉게 되면 우리 모두는 배우들을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가 된다. 아니 애초에 연기를 촬영한 카메라도 일종의 관음자일 것이다.

보다 쉽게, 신음 섞인 자신의 저속한 욕망을 대리 만족할 수 있는 시선의 도둑질, 억누를 수 없는 도착적 욕망의 도가니로 칙칙한 관음증을 생각하지만, 뒤집어 보면 ‘관음’도 ‘관심’이 있어야 시작된다.

독일영화 <타인의 삶> 은 신기하게도 바로 이 관음증이- 아니 상대방을 계속 도청을 하니, 청음증이라고 해야 하나- 거대한 인간관계의 시작일 수 있다고 말한다. 1984년 옛 동독.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요원 비즐러에게 어느날 경찰학교 동기이자 슈타지의 상사이기도 한 그루비츠가 도청을 지시한다.

상대는 동독의 가장 잘 나가고 있는 극작가인 드라이만. 그는 동독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매우 충실한 작가지만, 너무 매혹적인 여자친구와 사귄 것이 문제였다.

과잉 충성파인 그루비츠는 드라이만에게서 연인을 빼앗아 문화부장관에게 넘기려 들고, 여기에 비즐러가 동참을 한 것이다. 그러나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그에게 사랑과 믿음,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의지 같은 인간본성에 대한 감화가 싹트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결국 비즐러를 움직이는 것은 드라이만의 감성과 지성, 순수한 열정, 사랑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들이다. 즉 <타인의 삶> 은 그것이 비록 관음증이란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더라도, 인간의 교류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일방향이 될 수 없다는 낙관론을 펼친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훔쳐볼수록 드라이만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다. 그처럼 여자를 사랑해 보고, 그처럼 베르히트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 이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훔쳐보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앞지를 때, 인간은 그토록 변화하는 것이다. 마치 사랑의 감정이 그러하듯.

<타인의 삶> 이 동독체제에 대해서 발화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무자비한 도청으로 주민을 통치하는 거대한 관음증 환자인 동독이 무너졌던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서독을 훔쳐보다 서독처럼 살고 싶어진 동독인의 열망 때문이었다.

영화 <굿바이 레닌> 에서 향수 어린 물기로 동독에게 유머스런 고별사를 던진 독일이 이제는 좀 더 냉정한 시선으로 나치 이후 최악의 역사를 직면한다. 그러한 면에서 차가운 감정적 냉장고에서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되어가는 비즐러야 말로, 현재 독일이 바라 마지않은 미래의 모습은 아닐까?

<타인의 삶> 은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곧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될 예정이다. 어떤 배우가 맡든 비즐러 역의 울리히 뮈헤의 필적하는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타인의 연기’에 대한 관음증적 호기심이 벌써부터 앞선다.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 교수 심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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