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거리를 걷던 중년 부인 두 사람이 한 화랑의 유리창 안 쪽을 들여다 보더니 한참 웃었다. “저 삼계탕 닭 표정 좀 봐. 야, 정말 웃긴다.”
갤러리 아트사이트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 화가 리진(49)의 개인전에 나온 그림들은 재미있다. 두 부인을 웃게 만든 그림의 닭은 눈을 질끈 감은 게 꼭 “나, 숨 넘어갔다”고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음식남녀> 다. ‘음식남녀’는 “음식(식욕)과 남녀(색욕)에 인간의 큰 욕망이 있다”는 <예기(禮記)> 의 구절에서 나온 말로, 중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식욕과 색욕, 즉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솔직하고 익살스럽게 드러낸 것이 이번 전시다. 화선지에 붓으로 그린 수묵 담채의 형식은 문인화를 닮았는데, 담고 있는 내용은 속되고 속되다. 그런데도 전혀 저속한 느낌이 없이 자유롭고 한가한 것이 이채롭다. 예기(禮記)> 음식남녀>
여러 폭을 길게 늘어뜨린 그림 <민식이위천(民以食爲天)> 은 온갖 음식 그림과 빽빽하게 써넣은 글씨로 꽉 차 있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즉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제목의 뜻 그대로 식욕 예찬이 푸짐하다. 글씨는 고상한 화제가 아니고 음식 이름과 재료, 요리법이다. 민식이위천(民以食爲天)>
먹고 마시고 놀고 섹스하고, 그렇게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환락송>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는 어벙하게 바보스런 표정이 음흉하면서 귀엽다. 포동포동 흐물흐물한 살덩어리는 달콤해 보인다. 환락송이라도 따라 부르고 싶게 만드는 전염성을 지녔다. 다른 그림에는 변비에 걸렸는지 잔뜩 찡그린 채 변기에 앉아 있거나, 목욕통에 몸을 담근 채 히죽 웃는 모습의 남자도 보이는데, 다 작가 자신이다. 환락송>
최근 2, 3년 사이 중국 현대 미술이 자주 국내에 소개되고 있지만, 리진은 수묵화 전통 안에 현대의 일상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 남다르다. 중국에서는 이를 ‘신 문인화’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답적 문인화의 세계가 이토록 유쾌하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게 신선하다. 27일까지. (02)725-1020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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