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아트의 왕자’ 앤디 워홀(1928~1987)이 죽은 지 20년, 그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 <앤디 워홀 팩토리> 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15일 시작됐다. 워홀의 고향인 미국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에서 시기별 대표작 200여 점을 가져왔다. 지난해 가을 서울대미술관과 쌈지길 전시로 불기 시작한 워홀 붐에 정점을 찍는 대형 전시다. 앤디>
워홀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만개한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다. 팝 아트는 신문ㆍ잡지ㆍTV 같은 대중 매체, 상품 광고, 쇼윈도 등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만화 주인공, 영화 배우 등 대중적인 요소를 작품에 끌어들여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이분법을 무력화했다. 작품을 만드는 기법도 실크스크린처럼 상업 광고 등에 자주 쓰는 대량 복제 인쇄 방식을 썼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고 했던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ctory), 즉 ‘공장’ 이라고 불렀다. 그는 ‘공장’에서 작품을 대량 생산했다. 똑 같은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그러니까 손 작업이 아니라 기계를 써서, 많은 조수를 부려서, 공산품 제조하듯 지겨울 만큼 반복적으로 찍어냈다. 마릴린 먼로, 마오쩌둥 같은 유명인이나 캠벨 수프 깡통 같은 일상 용품의 이미지를 수없이 복제해서 나열했다. 그는 작가의 독창성이나 개성, 감정까지 없애버린 대량생산물로서의 예술을 원했다.
왜 그랬을까. 아니, 그런 것도 예술인가. 친절한 설명은 아니지만 워홀이 했던 말이 있다. “나는 지겨운 것들을 좋아한다. 왜냐고? 당신이 곧이곧대로 똑 같은 것을 더 많이 쳐다보면 볼수록, 의미는 더욱 더 사라져 없어지고, 당신은 더욱 더 텅 빈 상태가 되어 더욱 더 좋은 기분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마오쩌둥이나 캠벨 수프 이미지로 벽을 도배하고 동선을 이리저리 엇갈리게 배치하는 등 워홀의 공장 분위기를 살려 공간을 독특하게 연출했다. 60년대 캠벨 수프 통조림 연작부터 꽃, 마릴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등 유명인의 초상 복제, 교통 사고나 추락사, 케네디 암살 사건 등의 신문 보도 이미지를 복제한 재난 연작, 다빈치나 보티첼리 등의 르네상스 명화를 차용한 작품 등 워홀의 주요 작품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죽음의 이미지를 다룬 재난 연작은, 얼핏 화려하거나 경박하게 느껴지는 워홀의 세계가 지닌 깊은 어둠 혹은 정신적 외상의 흔적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들 연작은 끔찍한 사고나 죽음조차 대중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내보임으로써 일상적인 것으로 소비시키고 마는 현대의 상황을, 미동도 하지 않고 차갑게 보여준다. 가발을 쓰거나 여장을 한 채 찍은 자화상도 인상적이다. 실크스크린 작품들 외에 드로잉, 사진 작품, 전시 포스터 등도 볼 수 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워홀이 찍은 영화 8편을 상영한다. 워홀은 1960년대 후반부터 100편이 넘는 장편 영화를 제작했다. 감정을 배제한 채 장시간 꼼작하지 않고 극히 일상적인 장면을 관찰하고 기록한 그의 필름은 연출과는 거리가 멀다.
워홀은 스타가 되고 싶어했고, 소원대로 스타가 되어 지금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돈도 왕창 벌었다. 그가 남긴 재산은 무려 1조 달러다. 작업실로 유명인들을 불러 시끌벅적 파티를 할 때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며 일을 했던, 일 중독자이기도 하다.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워홀이 왜 그리 대단하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번 전시는 그런 질문들에 흥미로운 열쇠를 제공한다. 6월 10일까지. (02)2014-6901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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