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고 나면 쪼르르 달려와 “엄마, 보실래요?” 하며 쉽게 보여주더니, 그날은 일기장을 가방에 쑥- 넣어놓고 아무 소리 없이 가버렸다. 아이가 잠든 동안 가방 속 깊이 숨겨진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라 참 힘들었다. 며칠 지나 아이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다시 일기장을 내밀던 날, 슬쩍 그날의 일기도 보았다.
오늘 포스터 다 하고 엄마한테 검사 맡았다. 엄마가 내용을 잘 파악 못했다고 그러기에 짜증을 냈다. 근데, 엄마가 책을 안 봐서 그렇다고 해서 엄마랑 계속 싸웠다.
엄마는 너무 짜증난다. 만날만날 잔소리, 따지고… 엄마가 너무너무 정말정말 짜증난다. 엄마랑 계속 싸우다 엄마가 화가 났는지 내가 그린 포스터를 던졌다. 엄마는 내 마음을 모른다. 엄마가 책을 좋아하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아까 포스터 던진 건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엄마는 자기 말만 하고 가버린다. 아까도 내가 말하려고 할 때 가버렸다. 하여튼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짜증난다. 오늘 엄마랑 싸워서 효도쿠폰 안 했다.
그날 일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통일 포스터를 그린다더니, 온갖 만화캐릭터들을 그려놓고 ‘우리는 한가족’ ‘남북통일’이라 써놓은 아이의 그림에 내 마음이 상했다. ‘내’ 딸에 대한 욕심이 넘치는 엄마의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을 거다. “너는 포스터가 뭔지도 모르니?
평소에 책을 안 보니까 그런 것도 모르지!” 그렇게 빈정댔다. “다시 그려. 앉아봐. 엄마가 포스터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그러면서 아이 손에 있던 포스터를 밀친 게 그만 ‘던져버린’ 꼴이 됐다. 그때 아이 눈에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을 보았다. “싫어. 엄마 정말 짜증나.” 그렇게 쏘아붙이고 방 안에 박혀 있던 아이….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엄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됐을까? 정말 짜증났겠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아이만큼만 생각하자고 나에게 주문한다. 아이가 과정을 즐겼다면 함께 기뻐해주자고. 그 작은 약속 하나 해본다.
어린이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 관장 김소희 책읽는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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