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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로큰롤에 맞춰 흔들어봐 ♬♪ 추위와 가난쯤 잊어버려♬ 툰드라의 소년들도 그렇게 별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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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로큰롤에 맞춰 흔들어봐 ♬♪ 추위와 가난쯤 잊어버려♬ 툰드라의 소년들도 그렇게 별을 품었다

입력
2007.03.1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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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보이즈 / 미카엘 니에미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발행ㆍ352쪽ㆍ9,500원

스웨덴 하고도 북쪽끝의 외딴 마을 파얄라, 때는 1960년대. 툰드라와 침엽수로 둘러 싸인 이 지역에도 막 피어나는 청춘이,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핀란드 너머 러시아까지 뻗쳐 있는 보드카 벨트에서 비틀스와 엘비스는 빛나는 일탈을 충동질한다.

스웨덴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이 팔렸고 국민의 8분의 1이 읽은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30여개 국에서 번역 출간 등의 기록을 갖고 있는 <로큰롤 보이즈> 가 나왔다. 작가 미카엘 니에미는 파얄라 토박이다.

20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단편 모음집처럼 경쾌하다. 소년들 간의 비밀스런 언어, 로큰롤과의 충격적 조우, 첫 음주, 엉망이었던 첫 공연, 한겨울 밤 스키 타기, 술 마시기 대회 등 성장 소설이라면 으레 있음직한 풍경이 전편을 장식한다.

이제 막 영국ㆍ미국의 팝 문화를 접하고 열광하게 된 북유럽 마을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초면인 아이들이 코딱지를 함께 후벼 파다, 상대방의 코딱지를 삼키는 행위로 교제 의사를 나타내는 장면 등 특유의 별난 생활 풍토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유령과 숲 속의 마녀는 아직 건재하다. 그렇게 자연 질서와 교호하는 삶의 모습들은 이 사이버 시대에 묘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소실돼 가는 ‘메엔키엘리’, 즉 토착 핀란드어 대한 안타까움 또한 곳곳에 빛을 발한다. 그 언어로 나눈 짤막한 대화는 가끔씩 알파벳으로 표기돼 있어, 원어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언젠가 사라질 소수 문화에 대한 애수 어린 헌사이다.

주린 배를 채우려 떼로 몰려드는 연금 생활자들, 예배에 초청된 흑인들을 보려고 교회에 몰려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빛 바랜 필름을 보는 듯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혹독한 환경은 인간을 신에게로 가까이 데려간다. 정령들, 교회 풍경이나 장례식에 대한 묘사가 종종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벌목과 광산 노동, 혹독한 가난, ‘혀를 뻣뻣이 마비시킬 듯한 추위’가 계속되는 곳이지만,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엘비스의 열정적 목소리에 주인공들은 환호한다.

“Rock and roll music. 비틀스. 너무 좋아서 꿈만 같았다.”(106쪽) 화약통이 갑자기 폭발하는 바람에 집안은 엉망이 됐지만, 소년들은 EP판으로 듣는 비틀스에, 팝 문화에 넋이 뺏겨 있다. “캘리포니아는 히피의 ‘플라워 파워’와 사이키델릭 록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영국은 킹크스, 더 후, 스몰 페이시스, 홀리스 같은 밴드들로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115쪽)

어른들과 사우나를 하다 틈을 타 술을 마시려 잠깐 나온 사이, 자신에게 눈독 들이고 있던 어느 여인으로부터 거의 겁탈에 가까운 성적 경험을 당하는 등 성에 눈뜨게 되는 대목은 성장 소설의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남성들만의 공동체에 더 관심이 많다. 격한 노동 뒤, 사우나를 함께 하고 피로를 달래면서 사내들은 “이게 섹스보다 낫다”고 소리친다. 여성성의 시대, 이 소설은 남성적인 정서에 기대고 있어 이채를 띤다.

40여 년 전, 서양의 어느 오지에서는 순수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멀어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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