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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왜 이혼 안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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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왜 이혼 안 하시나요?"

입력
2007.03.1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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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선 이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기원 수 세기 전 줄리프 왕이 즉위하던 해, 인도 전역에서 2,000 쌍의 부부가 합의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왕은 즉시 이혼 금지령을 발표했다.

그러자 그 이듬 해 결혼하는 커플이 3,000쌍이나 감소했고, 배우자의 외도를 호소한 부부가 7,000 쌍에 이르렀으며, 75명의 남편이 부인 살해 혐의로 화형 되었고 300명의 부인이 남편 독살 혐의로 산 채 화형대에 올랐다 한다.

뿐만 아니라 재산 손실이 300만 루피에 이르게 되어, 왕은 눈물을 머금고 이혼 특권(?) 부활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혼의 원인은 결혼"이란 선언과 더불어 이혼에 관한 뼈 있는 농담이 아닐는지.

● 2004년 47%까지 오른 이혼율

배우자의 폭력이나 외도와 같이 유책(有責) 사유가 없다 하더라도 이혼이 가능해진 현실을 일컬어 "이혼의 규범화"라 한다. 실제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미국의 이혼율은 50%를 넘나들고 있다.

여기서 이혼율이 50%라 하여 결혼하는 커플 두 쌍 중 한 쌍이 언젠가는 이혼함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미국에서 이혼율 53%를 기록하던 해, 500쌍의 커플을 선정하여 7년 동안 추적해본 결과 약 38%가 이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미국의 가족 전문가들은 이혼 커플 보다 이혼하지 않고 평생 해로하는 부부들에게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요즘 서구 가족학계에선 "왜 이혼 안 하는지"를 주제로 한 연구가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혼의 규범화 시대에 평생토록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들을 연구해본 결과, 신기하게도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들 부부는 낭만적 사랑을 성숙한 신뢰로 승화시킴으로써 사랑의 불안정성을 삶의 안정성으로 대체해나가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사랑이 식었기에 헤어지노라는 우를 범하는 대신, 상대를 진정 존경하노라 고백하더라는 것이다. 나아가 배우자에 대한 집착이나 독점욕 대신 서로의 발전을 모색하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관계를 유지해가는 것으로 나타났고,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부 서로간의 공평한 희생과 양보가 중요한 관건임을 역설했다고 한다.

한편 우리네 이혼율은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대체로 한 자리 수에 머물러 있다가 1990년 들어서야 11.4%로 두 자리 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1980년대 까지만 해도 가족 연구자들은 도무지 부부라 이름 붙이기 민망할 만큼 소 닭 보듯 하면서도, 왜 이혼 안 하고 한 지붕 아래 사는지를 매우 궁금해 했다.

어느 해인가 전국 규모의 가족 조사를 통해 그 이유를 질문해 보니 예상대로 '자녀 때문'이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음은 물론이나, '배우자 잘 되는 꼴 보기 싫어서'란 솔직한 답이 뒤를 이어 연구진을 놀라게 했다.

● 평생부부의 멋 전수받아야

그러던 것이 1995~2000년 사이엔 이혼율이 17.1%에서 32.5%까지 뛰어 올랐고, 2004년에는 무려 47.4%까지 올라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이혼율이 다소 하강 추세를 보이고 있긴 하나, 예전의 한 자리 숫자로 되돌리긴 불가능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과중한 양도세 부담을 일시적으로 피하기 위해 서류 상 이혼을 감행한 후 재결합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세금법의 미숙함을 탓해야 좋을지 이혼까지도 불사하는 우리네 정서를 탓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와중에 드는 생각인 즉, 우리네 부부는 '진정 무엇으로 사는지' 내심 궁금해온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점차 관대해질수록, 실상 부부관계의 진수를 되새김질해 보고, 칠팔십 평생 동안 곰삭힌 부부의 멋과 맛을 전수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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