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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빚 갚으려 초등생 납치·살해 20代가장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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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빚 갚으려 초등생 납치·살해 20代가장 검거

입력
2007.03.1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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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 생명을…" 아, 악몽의 봄아파트값 비싼 신도시 부자로 오인시신 유기한 후 십여차례 협박 전화… "명랑한 아이였는데…" 주변 눈시울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어린이가 20대에게 유괴된 뒤 살해됐다. 유흥비 등으로 1억원 이상 빚을 진 범인은 아파트값이 비싼 신도시‘부자’를 노렸지만, 희생자는 평범한 맞벌이 교사 부부의 외아들이었다. 유족들은 “얼마나 무서웠니…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며 절규했다. 범인도 아내와 11개월 된 아들을 둔 가장이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15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던 박모(8)군을 유괴해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견인차량 운전기사 이모(29)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1일 오후 1시30분께 연수구 송도동 금호아파트 상가 앞에서 박군을 납치한 뒤 포장용 테이프로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 숨지게 한 혐의다. 이씨는 유흥비 3,000만원과 대출금 등 빚 1억3,000만원을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고 박군은 유괴당한 날 범인 차량에서 숨졌다.

◆유괴 당일 손발 묶인 채 숨져

이씨는 박군에게 “○○고교로 가는 길을 알려 달라”며 접근해 자신의 견인차에 태웠다. 이씨는 박군을 유괴하기 전 이미 4,5명의 어린이에게 같은 수법으로 접근했다. 박군의 집은 교회에서 불과 400m 거리였다.

이씨는 박군에게 집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입을 테이프로 막고 손발을 묶어 차량 뒷좌석에 싣고 다녔다. 지역 토박이인 그는 경찰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해 인천과 부천 시흥 등을 돌았다. 그는 13일까지 사흘 동안 공중전화와 훔친 휴대폰으로 16차례나 박군 부모에게 1억3,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휴대폰으로 박군 목소리를 녹음한 뒤 부모에게 전화해 “아빠 보고싶어요”라는 울먹이는 말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11일 오후 11시30분께 박군은 뒷좌석에서 질식사했고 당황한 이씨는 12일 0시10분께 남동구 유수지에 시신을 유기했다. 박군 부모는 13일 새벽 이씨 요구에 따라 현금 1억원을 준비하고 약속 장소에 갔지만 경찰 잠복을 눈치챈 이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부자 아들 유괴해 빚 갚자”

이씨는 차량 견인사업이 실패하고 아파트(24평) 담보 대출금 부담이 커지자 범행에 나섰다. 범행 이틀 전 돈 문제로 아내와 심하게 다툰 뒤 유괴를 결심했다. 그는 최근 집값이 크게 오른 송도신도시 주민 중 부자가 많을 것으로 보고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찾던 중 우연히 박군을 선택했다.

경찰은 공중전화 발신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주변 건물의 폐쇄회로(CC) TV 화면에 특정 견인차량이 자주 찍힌 점을 확인하고 차량 소유주를 추적해 14일 오후 2시10분께 집 주변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던 이씨는 15일 범행일체를 시인했고 경찰은 이날 손발이 묶인 채 포대자루에 쌓인 박군을 찾아냈다.

박군은 평소 밝은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모범생이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담임 교사 이모(58)씨는 “명랑했던 박군이 변을 당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내 아들 희생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모방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오열했다.

인천=송원영기자 wysong@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어린이 유괴사건 왜 자꾸 늘어나나

*주택밀집 지역·학교 등 변변한 CCTV 거의 없어

인천 초등생 유괴 사건은 경찰 초동수사의 허점, 범죄 교육 미비 등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선진국과 같은 제도적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는 한 어린이 유괴사건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어린이 유괴사건은 2005년 13건, 지난해 18건이 발생하는 등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범인 검거율이 90%를 웃도는데도 유괴사건이 계속 늘어나는데 대해 전문가들은 장비와 예방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미성년자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 전국 고속도로와 역, 도심 광장 등의 전자게시판을 통해 납치 어린이의 인상착의와 나이, 성명 등을 표시해 주는 이른바 ‘엠버 경고 시스템’을 시행 중이다.

1996년 텍사스에서 납치돼 7시간 만에 무참히 살해된 소녀 ‘엠버 해거먼’ 사건 이후 희생자의 이름을 따 생긴 제도다. 미국에선 이 시스템 작동 이후 어린이 유괴사건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택 밀집지역이나 학교 등에 전광판이나 폐쇄회로(CC)TV를 갖춘 곳이 거의 없다. 어린이 유괴범이 도심을 멋대로 장시간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사건 용의자 이모(29)씨도 4일 동안 시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숨진 박모(8) 군 집에 16차례나 협박전화를 했지만 한번도 신고나 제지를 당하지 않았다.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도 고질적인 문제다. 특히 유괴 사건에선 초동수사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린 생명이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에서도 용의자 이씨는 유괴 첫날인 11일 어린이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족에게 4차례나 협박전화를 했지만 경찰은 두 손을 놓고 있었다.

경찰은 사건 다음날인 12일에야 1,000의 경찰병력을 투입했으나 용의자를 잡지 못했다. 가정과 학교 등의 범죄 예방책도 허술했다. 이씨는 아파트 인근에서 어린이를 유괴하려고 4, 5차례 시도하다 실패하고는 박군을 납치했다. “낯선 아저씨를 쫓아가서는 안 된다”는 교육만 받았어도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는 “유괴 사건을 줄이려면 미국과 같이 국가 차원의 유괴방지 시스템을 가동하고 학교보호구역 확대 및 통학길 안전 확보 등 교육 당국의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원영 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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