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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 학문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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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 학문 하기

입력
2007.03.1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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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문사회과학이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서양 학문에 매몰되어 있다는 말은 수없이 나왔다. 인문학의 빈곤, 서구 중심주의의 문제점, 사회과학의 타자 준거성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앞장서서 고쳐보려고 나선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 서양 학문의 패권에 눌려

이런 말은 이미 70년 전에 당시 젊은 철학자였던 박종홍이 하였고, 글쓴이의 분야인 정치학에서도 30년 전에 문승익이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글쓴이는 부족하나마 우리 처지에 적합한 시각과 분석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한국적인 한국학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최봉영 교수 같은 분 역시 대중 매체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목을 끄는 것은 알맹이도 없이 껍데기만 요란한 몇몇 '자생적 학문'의 패권자들이다. 또 구체적인 행동 없이 우리 학문을 해야 한다는 말만 현란한 수식어로 되풀이하는 학문적 멋쟁이들이다.

자신이 나서서 고쳐 볼 용의가 없는 사람들은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 한 주일 동안 나쁜 짓하고 일요일에 한 번 교회 가서 회개하는 날라리 신자처럼, 어쩌다 한번 술 마시면서 아니면 토론회 같은 데서 우리 학문을 해야 한다는 둥 한 마디 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면 왜 우리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은 많아도(사실 그들도 소수이기는 하다), 실제로 고양이에게 접근하기는 고사하고 방울을 사러 가는 사람조차 드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서양 학문의 패권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 서양, 아니 미국 사람에게서 배운 한국 학자들이 미국 학문으로 패권의 높은 담을 쌓고 여기서 벗어나는 얘기들은 보편성이 없다느니 객관성이 부족하다느니 하면서 도무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자학이 아닌 사문난적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지금껏 배워온 서양 학문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는 '이상한' 얘기가 나오면 반발하는 것이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다. 글쓴이가 '단일사회 정치론'이라는 논문을 어디서 발표하였더니, 한국 문학사를 전공한 어느 젊은 학자는 한국이 왜 단일민족이냐고, 국수주의 이데올로기 아니냐고 따졌다. 답답한 노릇이다. 한국이 권위주의 사회라고 말하면 권위주의자가 되는가? '한국학자'마저 서양 물을 너무 먹은 탓이다.

● 악조건에도 그냥 하면 된다

이런 반발에 대해 처음에는 학문적으로 대응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반발의 실체는 "그럼 내가 지금껏 배워서 써먹고 있는 것은 뭐냐?"는 것이었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적 학문을 한다는 것이 꼭 학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또 경제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문 패거리와 상업주의를 깨지 않고는 우리 고유의 학문을 할 수 없다.

길게 말할 것 없다. 문제는 실천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악조건들이 많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 이들을 열거할 필요는 없다. 악조건 속에서도 그냥 하면 된다.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하나? 그냥 하면 된다.

원래 공부 잘 하는 학생은 공부 방법 같은 것 신경 안 쓴다. 그냥 한다. 좋아서 하고,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서 한다. 우리 학문 하기도 그래야 한다. 좋아서 하고, 의무감으로 하고, 다른 나라에게 지기 싫어서 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올수록 좋다. 그럴수록 우리 학문이 발전한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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