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하나 더 낳아볼까.”“부부싸움이 줄었다.” 서울 용산 한강로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업계에서‘여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로 소문이 났던 아모레퍼시픽은 요즘 ‘부모 노릇, 아내와 남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회사’로 진화하고 있었다. 직원들도 회사 자랑에 입이 마를 새가 없었다.
● 여자들이 다니기 좋은 회사
진윤진 “전 원래 유통업체에 다니다가 지난해 7월에 이직했는데, 여직원이 많고 남성 중심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문화적 충격이 컸어요. 전 직장도 대기업이어서 법정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남성 중심적인 기업에서 아무래도 여자들은 진급 등에서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여긴 팀장이나 임원 중에도 여성이 많아요. 사회생활과 엄마 노릇 둘 다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여건인 것 같아요.”
이선혜 “여자들이 사회생활 할 때 좌절하는 문턱이 출산과 육아잖아요. 우린 출산이나 육아휴직 같은 걸로 회사 눈치를 보지 않아요. 오히려 회사가 장려하는 편이죠. 마케팅부문에는 여직원들이 60~70% 가량 되는데, 마케팅팀이 있는 본사 4층에는 삼신할머니가 떠날 줄 모른다고도 해요. 해마다 10여명은 배가 부른 채로 다니니까요. 3년 전 제가 한 달 차로 동료 한 명과 같이 출산휴가 들어갔을 때도 팀내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어차피 자기들도 겪을 일이잖아요.”
나덕운 “입사 14년이 됐는데 ‘기업의 가풍(家風)이라고 할까’ 경영진도 창업주도 여성을 많이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고 서성환 회장의 유산으로 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주로 가정을 지원하는 데 쓰이죠. 화장품을 만들고 여성 인력 활용도 많아서 이겠죠. 팀 운영에 문제가 없다면 출산으로 인한 휴가나 휴직을 기피할 이유가 없죠. 저도 팀원들의 출산이나 육아휴직을 일부러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 아이 키워주는 회사
진 “그렇다면 저 둘째 낳아도 괜찮은 거죠, 팀장님. 얼마 전 우리 팀이 ‘밸런스드 하모니(Balanced Harmony)’라는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받았어요. 남ㆍ녀 성별, 상ㆍ하급자 등 조직원간에 서로 다른 개성을 조화시키는 프로그램인데, 개인의 성적 성향을 파악하는 체크리스트를 해보니까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여성적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왔어요.”
나 “‘밸런드스 하모니’ 교육을 받으면서 입사 이후 오랫동안 여직원들과 일을 해온 편인데 생각보다 여성들의 감성 이해가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여자들이 좋아했던 과거 드라마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접근하니까 알겠더라구요. 이런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활용해야죠. 우리 회사가 그런 면에서는 여러 프로그램이 상당히 잘 돼있는 편입니다.”
이 “임신 중에 본사 2층에 있는 여성휴게실이 큰 도움이 됐어요. 피곤할 때 쉬러 가기도 하구요. 간호사가 상주하기 때문에 도움도 받을 수 있구요. 또 유축기와 냉장고도 있어 출산 후 회사에 나오면서 모유 수유도 할 수 있어 편해요.”
나 “예전에 남자직원 비율이 높을 때 사원 부인을 대상으로 1박2일 과정의‘사원 부인 세미나’가 있었는데, 집사람이 3번 참가했어요. 아내가 동료 부인들과 지내면서 남편의 동료 관계나 직장 생활의 애환 등 알게 돼 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이 “3월부터 아들을 회사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아이 낳고 회사 다니면서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봐주실 때는 약수동 집과 분당 시댁을 오가느라 생활에 여유가 없었어요. 어린이집 입학에 맞춰서 일부러 회사 인근 아파트로 이사를 와 지금은 유모차를 끌고 회사에 출근해요. 출산휴가 때 미국여행을 갔을 때 출근길에 유모차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는데 요즘 제 출근길이 딱 그 분위기에요.”
진 “아, 오늘 그 유모차 주차하는 거 봤어요. 제 딸 도연이는 지난해 10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요. 아모레퍼시픽으로 이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직장에 어린이집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린이집이 회사 주차장 바로 옆이니까 아이와 같이 차로 출퇴근하면 편하죠. 제 딸은 ‘엄마 회사 갈까’하면 싫다고 하는데 ‘유치원 가자’고 하면 얼른 집을 나서요. 아이들 식사도 유기농 식단이고, 놀이 프로그램도 탄탄해요. 밤에는 8시까지 맡아주기 때문에 퇴근이 늦어도 안심되고요.”
나 “아들 둘이 다 컸으니, 딸 하나 더 낳아서 저도 어린이집에 보내보고 싶어지네요. 작년부터 회사에서 카페테리아복리후생을 도입해 연간 50만원 한도로 문화 여가에 쓸 수 있는 복지카躍?지급했잖아요, 전 그걸로 가족에게 점수 좀 땄습니다. 1주일에 토요일 하루는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갑니다. 뮤지컬도 봤죠. 제 용돈이야 뻔한데 회사에서 비용을 대주는 셈이니까요.”
● 좋은 부모, 아내, 남편 되기
이 “내년쯤 둘째를 계획하고 있어요. 어린이집에 맡기기 전엔 주중에는 아이를 보러 두 집을 오가느라, 주말에는 아이 보랴 살림 하랴 정신도 없고 몸도 피곤해서 부부싸움이 잦았어요. 지금은 남편이 더 좋아해요. 가족들이 모여서 저녁도 함께 먹고 훨씬 규칙적이고 안정적으로 생활하게 됐어요. 가족들과 여유 있게 저녁시간을 보내기 위해 근무시간에는 더 열심히 일합니다.”
진 “전 친정어머니께 좋은 딸이 됐어요. 친정 어머니가 애를 봐줄 때는 서로 다툴 때도 많았는데 이젠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으니까요. 지금은 친정 어머니가 둘째도 낳으라고 하시네요. 회사 어린이집에는 만 24개월부터 3년간 맡길 수 있는데, 육아휴직을 한다고 해도 어린이집에 맡기기 전 1년간은 ‘육아전쟁’을 치를 수 밖에 없어요. 바람이 있다면 회사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1년 정도 더 맡아주면 좋겠어요.”
나 “가족들 사이에서 같이 잘 놀아주지 않는 아빠이자 남편이라는 불만은 여전하죠. ‘좋은 아빠’라고 자신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복리후생제도에 변화가 생기는 등 회사가 바뀌면서 가족에 좀 더 신경을 쓰는 환경이 갖춰졌죠. 회사가 계속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해요.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고 있는 변화라고 할까요.”
대담자
●나덕운(40) 마케팅이노베이션팀 부장(사진 왼쪽)
전업주부 아내와 중2ㆍ초등6 아들 2명 둔 결혼 16년차
●진윤진(29) 마케팅이노베이션팀 과장(사진 가운데)
26개월 딸과 회사원 남편 둔 결혼 4년차
●이선혜(30)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과장(사진 오른쪽)
25개월 된 아들과 회사원 남편 둔 결혼 4년차
◆㈜아모레퍼시픽의 사회공헌프로그램·복리후생
<사회공헌프로그램>사회공헌프로그램>
▲저소득층 여성가장 창업 지원 '희망가게'= 12호점 개점. 창업주 고 서성환 회장의 유산으로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세상기금'조성
▲국제결혼 이주여성 지원 기금 = 여성가족부 여성발전기금 총 10억원 출연. 이주여성의 한국어교육, 상담, 가족교육, 자녀양육지원, 출산 전후 도우미 파견지원 등
▲이주 여성외국인 대상 메이크업 교육= 월2회 실시
<복리후생>복리후생>
▲직장보육시설 어린이집 운영 = 서울 본사, 용인 기술연구원, 수원 공장 등 3곳
▲여성휴게실 운영= 본사 1곳. 간호사 상주, 유축기 등 착유시설
▲밸런스드 하모니교육= 양성친화적 교육프로그램. 2006년부터 실시
▲직원 및 가족 대상 무료 문화체험= 박물관 등 전시 관람, 문화답사
문향란기자 iami@hk.co.kr
■저소득 여성가장 창업지원 12곳에 '희망가게' 열어줘
지난달 21일 서울 신당동에 문을 연 자동차 외형복원 전문 프랜차이즈 ‘세덴 신당점’은 주부 가장 이경숙(51) 김명옥(47)씨의 소박한 꿈이 이뤄진 곳이다. 이 점포는 ㈜아모레퍼시픽이 기금을 조성해 아름다운재단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저소득층 여성 가장 창업지원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이 12번째로 결실을 맺은 곳이다.
아모레퍼시픽의 가족친화경영은 집안 챙기기에서 한발 나아가 사회 전체의 ‘가정’을 배려한다.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유산(당시 50억원 상당 주식 출연)으로 2003년 6월 기금을 조성해 시작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이 대표적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또 2004년부터 해마다 2억원씩 총 10억원을 여성가족부의 여성발전기금으로 헌납,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이민 여성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어 교육, 가족 상담, 출산 도우미 파견 지원 등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시하는데 지난 한 해 118개 국제결혼 가정에 혜택이 돌아갔다. 화장품 제조사의 특성을 살려 한 달에 두 차례 이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메이크업 강좌도 실시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직원들이 일과 출산ㆍ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복리후생제도도 갖추고 있다. 이 달 5일 개원한 ‘아모레퍼시픽 수원 어린이집’을 포함해 직장보육시설 어린이집 3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만2~4세의 직원 자녀 약 80명이 다니고 있다.
직원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매달 한차례 미술 전시나 박물관 관람의 기회를 주는 문화체험프로그램도 매회 100명 정도 참가할 정도로 인기다. 지난해 8월부터는 남ㆍ여 직원이 함께 일하는 조직 문화 형성을 위한 ‘밸런스드 하모니’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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