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어느날. 집에 있자니 심심하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동네 친구들과 접선했다. ‘버스 타고 5분 거리 노래 녹음해주는 노래방 오픈. 실력발휘 OK ’ 청명한 오후 목청을 가다듬고 노래방에 집결한 20대 숙녀들은 한바탕 노래잔치를 벌였다. 박정윤(21ㆍ여)씨는 휘트니 휴스턴의 ‘The Greatest Love Of All’을 신들린 듯 열창했다. 조잡한 노래방 녹음테이프에 담은 그 노래가 삶의 ‘크레셴도’(점점 세게 연주)가 될 줄 그땐 미처 몰랐다.
박씨는 최근 그 노래 덕분에 가수왕이 됐다. 내로라 하는 가요제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그는 ‘싸이월드 쏭 페스티벌(2회)’의 대상 수상자다. 다시 말해 사이버 가수왕이다. 네티즌의 폭발적인 지지(1차 60%, 2차 40%)와 전문가의 공정한 심사(1차 40%, 2차 60%)를 통해 무려 700대 1의 경쟁을 뚫었다. 쏭 페스티벌에는 누구나 자신이 녹음한 노래를 출품하면 된다.
그는 “미니홈피에 제가 직접 부른 노래를 배경음악(BGM)으로 쓰려고 녹음한 건데 친구들 성화에 밀려 재미 삼아 참가했다”고 말했다. 상금 300만원에 싸이월드 BGM 정식 출시라는 영광을 얻은 자의 고백치곤 밋밋하다.
실제로 그는 가수 지망생이다. 어린시절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체력이 달려 그만뒀고, 중학교 때는 ‘말썽만 부리는’ 사춘기를 보냈다. 고2 어느날 노래는 구원처럼 찾아왔고, 그 뒤 ‘뮤지션이 되자’고 마음 먹었다. 가족의 반응은 마치 ‘변증법’ 논리와 닮았다.
-정(正): 10년 전. “우리 딸 어쩜 그리 노래를 잘하니. 가수해도 되겠네.”
-반(反): 5년 전. “기껏 한다는 게 딴따라냐. 당장 집어 쳐.”
-합(合)은 최근에야 이뤄졌다.
박씨는 “올해 대학에 진학(동아방송대 실용음악과)하고 오디션을 받은 곳에서 종종 연락이 오자 이젠 되려 부모님이 스케줄과 진척사항을 물어본다”고 했다.
미니홈피 2,000만개를 거느린 싸이월드에서 일약 스타가 됐지만 그는 부족한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작은 결실에 취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깜짝 인기가 아닌 다듬어진 실력으로 인정 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프라인 노래대회에는 기웃거리지 않을 생각이다.
박씨는 휘성 빅마마 등에게 곡을 준 작곡가 홍정수씨로부터 곡을 받아 14일 싸이월드에 BGM을 정식으로 출시한다. 그는 “가수 린이 부르려다 라이브가 힘들어 포기한 곡이라는 데 느낌이 왔다”고 귀띔했다.
미치도록 되고 싶었던 가수가 절반쯤 됐으니 왜 욕심이 없을까. “사이버 세상에서만이라도 ‘이런 가수가 있구나’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이제 실패해도 후회는 없다. 아직 젊으니까.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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