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위기 뒷수습을 위해 조성한 수십 조원의 공적자금 상환을 상습 연체하고 있어, 후세대가 부담할 나라 빚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매년 재정에서 일정액을 공적자금 상환에 쓰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나라 살림을 줄여 현 세대가 좀 팍팍하게 살더라도 외환위기 처리 비용을 후세대에게 떠넘기지 않겠다는 약속이 공염불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2002년 말 발표한 공적자금 상환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갚을 길이 막막한 69조원 중 49조원에 대해 2003년부터 25년간 매년 재정에서 2조원(해당 연도 현재가치)씩 상환하기로 했다.
그 해에 쓸 예산을 줄이고 세금을 더 거둬서라도 갚아가겠다는 것이었다. 또 매년 예산에서 쓰고 남은 돈(세계잉여금)의 30%를 공적자금 상환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지난 5년 동안 재정에서 2조원 이상 갚은 것은 2003년(2조1,000억원)과 2006년(3조3,800억원) 두 번 뿐이다. 세계잉여금의 30%를 공적자금 상환에 쓴 것은 2006년 한번 뿐이다. 국민 약속과 달리 갚겠다던 빚이 계속 뒤로 밀리고 있는 셈이다.
2004년의 상환 계획은 2조1,000억원이었지만 2,500억원만 재정에서 출연했고, 2005년에는 2조3,000억원을 갚기로 했으나 1조3,000억원만 갚았다. 2007년에는 2조6,000억원을 갚게 돼있지만 올해 예산에는 단 200억원만 반영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계속되는 적자재정 상황에서 공적자금까지 상환하려면 적자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윗돌을 빼내 아랫돌을 괴는 것에 불과하며, 이 역시 후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없는 살림에 빚 갚으려고 또 빚을 낼 순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2002년말 '허리띠를 더 졸라매서라도 현 세대가 촉발한 외환위기 처리비용을 다음 세대로 미루지 않겠다'던 공적자금 상환 대책의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공적자금 상환 대책의 이행 실적과 평가' 보고서에서 이를 정면 비판했다.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당초 상환 대책의 취지는 적자국채를 더 발행해서라도 공적자금을 상환하는 식의 압박이 없다면 상환은 영원히 어렵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채를 추가로 찍어내면 재정적자가 늘어나겠지만 이런 식의 압박을 해서라도 정부가 다른 곳의 예산을 삭감하거나 세금을 더 거두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당초 대책대로 갚아도 전체 상환 비용의 44%를 외환위기와 상관없는 20세 이하 미성년자들에게 부담을 지우게 된다"며 "현 세대가 미래 세대의 몫을 이런 식으로 갉아먹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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