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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OFF] 다큐 '차마고도' 씁쓸한 원조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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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OFF] 다큐 '차마고도' 씁쓸한 원조논쟁

입력
2007.03.1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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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의 원조.’ 서울 장충동 족발골목에 가면 이런 간판을 내건 족발집을 볼 수 있다. 약 50년 전, 오늘날 족발로 불리는 음식을 처음 만들어 팔았다는 유서 깊은 집이다.

허나 우후죽순 주변에 들어선 또다른 ‘원조’들은 이 집의 정통성을 쉬이 인정하지 않는다. 저마다 원조를 강조하는 상술 탓에 쫀득한 족발맛도 텁텁하게 느껴지는 곳이 장충동 골목이다.

며칠 전 공중파 채널들 사이에도 때 아닌 원조 경쟁이 불붙었다. 중국 남서부에서 출발해 티벳을 넘어 인도까지 이어지는 옛 교역로,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소재로 만든 다큐멘터리의 원조 논쟁이다. KBS 1TV의 <차마고도 5,000㎞를 가다> 와 SBS의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캄> 이 그것.

시의성을 다투는 시사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KBS와 SBS는 비슷한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같은 날(11일) 저녁 시간대에 앞다퉈 편성했다.

주말 저녁, 두 편의 차마고도 다큐멘터리를 본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양사는 모두 자기 프로그램에 ‘방송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두 편의 내용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험난한 계곡에서 전통 방식으로 소금을 캐는 아낙들, 지그재그로 이어진 절벽길을 목숨을 걸고 오르는 카라반, 1,000년도 더 된 방식으로 불경을 찍어내는 인쇄소의 모습까지. 두 편을 모두 본 시청자들 사이에선 1, 2편을 잇달아 본 것 같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양사가 차마고도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게 된 내막은 복잡하다. 같은 외주제작자의 콘텐츠를 갖고 두 방송사가 몇 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아이디어의 상당부분이 겹친 것이 주된 원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같은 날 비슷비슷한 내용을 방송하느라 공공재인 전파를 낭비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원조논쟁은 결국 9월 방송 예정이던 KBS의 <차마고도~> 가 ‘맛보기’ 형식으로 SBS의 방송에 3시간 앞서 긴급 편성되는 촌극을 빚었다. 고급 다큐멘터리조차 ‘누가 먼저’라는 저급한 경쟁의 대상이 되는 한국 방송계의 현실을 다시 한번 노출한 셈이다. 쓸데 없는 경쟁이 시청자들을 식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방송사들이 깨닫게 되는 날은 언제일까.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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