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원(KDI)이 어제 국가재정 운용계획 토론회에서 대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를 시장 친화적으로 바꾸거나 시장의 자체 규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선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시급한 만큼, 투자 확대와 관련한 금융ㆍ세제ㆍ공장 입지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를 또 꺼낸 것은 '샌드위치 신세'인 우리 경제의 해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하고 싶어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심각하게 우려한 자리에서 "경제적으로만 보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 문턱에 바싹 다가섰으나 문제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말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달성을 위해 남은 과제는 신뢰와 통합, 즉 사회적 자본이 충실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인식에는 참여정부가 차세대 이동통신, 하이브리드 카, 지능형 로봇 등 10대 성장동력 산업과 첨단 부품ㆍ소재 산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박수는 들리지 않는다. 세계은행의 지식경제지수를 인용한 KD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ㆍ환경 제도는 5.70으로 선진 7개국의 8.01에 크게 못 미치고, 교육ㆍ인적자원 기술혁신시스템 정보통신기술ㆍ인프라 등의 경쟁력도 뒷걸음질쳤다.
그제 한국은행이 내놓은 자료는 더욱 충격적이다. "지난 10년간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정보기술(IT) 산업이 부품ㆍ소재 산업 취약, 고용ㆍ소득 창출력 저하, 주력제품 경쟁력 약화 등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원가경쟁력과 일본의 브랜드 및 기술력에 밀려 한국제품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1989년 4.5%에서 지난해 2.5%로 곤두박질쳤다는 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분석도 속으로 곪는 우리 경제를 잘 보여준다.
장기적으로 경제가 건강해질 것이라는 말은 고장 난 시계가 하루에 두 번 맞기를 기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대국적 정책을 펴라는 KDI 등의 지적을 흘려 들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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