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출마" 정계은퇴 선언
자크 시라크(74) 프랑스 대통령이 4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11일 TV 연설에서 “국민 여러분께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지 여부를 묻지 않겠다”며 4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그는 노련한 정치 베테랑답게 3선 도전에 여운을 남기며 임기말 권력 누수현상을 막으려 했지만 낮은 지지도, 고령, 건강악화 등을 이유로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참모로 정계에 입문한 시라크 대통령은 총리와 파리시장을 거쳐 1995년 삼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2년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의 당선을 막기 위해 프랑스 국민들이 마지 못해 던진 표에 힘 입어 재선에 성공했지만, 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이 부결되고 그해 교외 지역의 슬럼가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터지면서 위기에 몰렸다.
‘카멜레온 보나파르트’ ‘바람개비’ 등의 별명으로 불린 그는 어려운 국면을 헤쳐나가는데 수시로 정치적 견해를 바꾸는 처세술 강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막강한 추진력으로 재임기간 중 징병제를 폐지했고, 발호하는 극우파에 단호하게 맞섰다. 프랑스 정치인 최초로 비시정부가 2차 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협조한 사실을 인정했다. 1990년대엔 유고슬라비아 내전 종식에 중요 역할을 수행한 데 이어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전 반대의 선봉에 서 미국을 고립시킴으로써 세계무대에서의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프랑스 경제 개혁과 만성적인 실업 등은 거의 성공하지 못해 국내문제보다 국제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대통령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유럽 선진국 중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 막대한 국가부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빈곤층의 소요로 인한 사회적 긴장 등은 시라크의 불행한 유산으로 남게 됐다. 거기다 파리 시장 재직 시 공금을 유용했다는 부패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최근 시라크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시원시원하게 폭언을 쏟아내던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입담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영국이 유럽농업에 기여한 것은 광우병뿐” 등의 발언으로 주로 영국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남다른 ‘불어사랑’을 강조하는 그는 2006년 유럽연합(EU) 정상회의 때 한 프랑스인이 영어로 연설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5월 17일로 임기가 끝나는 시라크 대통령은 자신의 향후 계획이나 지지하는 대선 주자를 밝히지 않았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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