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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북한 핵이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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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북한 핵이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까

입력
2007.03.1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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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한다. 너무 낡은 표현이라 감동이 없다면, "국제관계에서 기적을 믿지 않는 자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다"는 격언을 떠올리는 것도 좋겠다. 그만큼 우리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에 넓게 열린 안목으로 대처하는 지혜가 요긴함을 절감하게 하는 시절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열흘 전 뉴욕 외교무대를 활보한 사건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몇 달 전만 해도 미국의 압박에 몰린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작은 몸집이 한층 왜소하게 보였다. 분수에 맞지 않게 거들먹거리기 일쑤인 여느 북한 인사와 달리 조신하면서도 영민한 모습이 인상적인 그는 북한 외교의 '숨은 일꾼' 으로 불렸다.

그런 이가 미국의 환대 속에 뉴욕 고급호텔에서 미국 전문가들과 밥을 먹으며 환담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까지 즐기는 '광폭 외교'를 요란하게 펼친 것은 작은 기적이라 할만하다.

● '기적' 예고하는 북미관계 변화

미국이 국가원수급 예우를 베풀었다는 보도는 언론의 과장으로 비친다. 뮤지컬 관람도 화해 무드를 과시하려는 제스처일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와 북미 간의 첫 공식 협상에서 내놓은 합의는 주변적 장식보다 훨씬 현란하고 파격적이다.

2ㆍ13 북핵 6자 합의가 이미 핵 대치 국면을 극적으로 반전시켰지만, 뉴욕에서 평화협정 체결과 수교 의사를 거듭 다짐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변화를 예고하는 듯하다.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남북미 3국 정상회담 등의 예측이 난무하는 것이 이를 상징한다.

북핵 논란에 지겹도록 시달린 우리 사회와 국제여론이 변화를 반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국이 완고한 자세를 갑작스레 바꾼 동기와 의도가 더러 미심쩍기는 하다.

그러나 이라크 개입 실패에 이어 이란 핵 문제가 악화하는 등 외교안보 정책의 신뢰가 위기에 처한 부시 행정부가 뒤늦게 북핵 관리와 한반도 평화구축에 성공한 실적이나마 남기려 한다는 풀이는 그럴 듯 하다. 제재와 압박에 치중한 대북 강경책이 핵 문제 해결을 스스로 막은 실책을 반성한 나머지라는 지적은 한층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곧장 '핵 해빙'에 이르거나, 마냥 화창한 봄날과 같은 평화가 이내 올 것으로 들뜰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 시작된 북한 핵 위기가 지난해 핵실험으로 최고조에 이르는데 걸린 것에 못지않게 긴 세월을 다시 인내하고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무릇 핵 문제 해결은 그만큼 어렵고, 북한의 처지에서 핵에 대한 집착은 유별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핵 폐기를 북핵 문제 해결의 절대적 조건으로 삼는 한, 비록 대치와 긴장은 완화되더라도 지루한 협상과 힘 겨루기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말 그대로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불안한 평화'에 익숙한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런 평화가 어디 있느냐고 화낼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인류가 60년 넘게 이고 사는 핵무기와 불량국가 북한의 핵은 근본이 다르다고 하겠지만, 핵을 가진 나라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현명한가는 미국의 정책변화가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평화적 핵 폐기가 목표라면 핵 보유 동기를 없애는 것이 문제 해결의 절대적 조건일 수 밖에 없다.

● 미국의 한반도 전략 바로 봐야

북미 관계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기적과 같은 변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언뜻 명백한 사리를 뒤늦게 깨우친 결과다. 그러나 노회한 미국이 전략적 무지 때문에 우여곡절을 거듭했다고 여기는 건 어리석다.

미국의 외교 원로 헨리 키신저는 일찍이 "냉전 이후 동북아의 안정은 유럽과 같은 집단안보체제가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국익과 힘을 사려 깊게 조정하는 세력균형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런 충고를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은 한반도 주변의 전략적 세력균형 구도를 새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만하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등도 모두 일관된 수순일 수 있다.

이런 변화에 직면해 고작 남북 정상회담에만 관심 쏟거나, 엉뚱하게 미국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원망하며 핵 무장을 외치는 따위는 모두 현실과 동떨어진 헛된 짓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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