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쯔’가 아니라 ‘부추’에요. 자, 정확하게 다시 한번 따라해 보세요.” “ ‘부추’ 맞아요! 정확하게 잘 발음하셨어요.”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마천1동 신명실업학교 2층 초급1반 교실. 첫 수업이 시작된 교실안이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다. 낯설고 머나먼 땅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신부들이 언어장벽 허물기에 한창이다.
선생님이 칠판에 ‘가’라고 적자, 모두 ‘가’라고 외친 후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공책 위에 열심히 받아 적는다. 하지만 몇 줄 되지 않아 글씨는 삐뚤빼뚤, 크기도 들쑥날쑥이다.
일본에서 온 오노 치요코(小野千代子ㆍ32)에게 어떠냐고 묻자, “째밌어요. 앞으로 열띠미(열심히) 할거에요”라며 떠듬떠듬 말을 이어갔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이들의 까막눈 탈출기는 이렇게 2시간 30분 동안 힘겹지만 의미있게 진행됐다.
베트남에서 온 토아(32)는 사회적응을 못해 남편에 의지해 어깨 너머로 배워 겨우 ‘좋아’ ‘싫어’ 등의 단순한 회화만 하는 정도이다. 한국에 온 지 1년여만에 한국어교실을 찾은 그는 “남편이라는 울타리만 벗어나면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면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지원으로 이번 학기부터 개설된 한글교실은 낯선 한국 땅으로 시집을 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결혼 이민자를 위한 강좌다.
올해 수강생은 베트남 일본 중국 필리핀 러시아 등 9개국에서 온 49명. 연령층도 10대후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하며 남편들은 대부분 공장 노동자, 화물차 운전 등 개인사업자, 장애인으로 대부분 생활형편이 좋지않은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지난 9일부터 내년 2월까지 주 3회 한글 수업을 받게 된다.
이동철(53) 교장은 “결혼 이민자들은 존댓말을 배우지 못해 집안 어른들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한글을 제대로 알아야 사회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2006년 말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 결혼 이민자는 2만 418명. 전국 8만 2,198명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2005년 기준으로 7,637명이 외국 여성과 결혼, 2001년 2,527명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났다.
이들을 돕기 위해 중앙부처와 서울시내 일부 자치구들은 지난 해부터 한국어 교육과 법률서비스 등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해마다 늘어나는 외국인 이민자 수에 비해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해 서울의 경우 전체 거주자 중에 한글교육 혜택을 받고 있는 비율은 10%선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원에 나서고 있는 지자체는 강동구 용산구 구로구 등이고 다른 지자체들은 프로그램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주여성인권센터 권미주(35) 상담팀장은 “농촌지역의 노총각과는 달리 서울에서는 안정된 직장이 없는 재혼, 장애인 등 저소득층 중심으로 국제결혼이 이뤄지고 있다”며 “언어 뿐만 아니라 문화차이에 따른 시댁과의 갈등, 경제적 빈곤 등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는 만큼 사회적응을 위해 다각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신보경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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