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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법서비스도 질을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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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법서비스도 질을 높여라

입력
2007.03.1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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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인 나는 주택 한 채를 가진 할머니의 고소장을 써 준 적이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관리인이 보증금을 횡령한 사건이었다. 한 달 후 담당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고소장을 그 모양으로 썼느냐고 화를 냈다.

범인의 주소도 없고 범행일시와 장소도 빠졌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수사관 앞에서 사정만 대충 얘기하면 조서도 작성해 주고 수사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형사의 입맛에 딱 떨어지게 경찰 자체에서 만든 관례와 틀이 정해져 있었다. 어디 사는 범인이 언제 어디서 어떤 범행을 어떻게 했다고 육하원칙에 따라 결론을 지어 오라는 것이다.

● 고소장 받으며 훈계하는 경찰

"국민이 수사를 다 하면 형사님은 뭘 합니까?"하고 내가 법원칙을 들이대면서 되물었다. 형사는 벌컥 화를 내면서 사법시험을 언제 어떤 성적으로 합격했는지, 그리고 법조에 들어온 지 몇 년이나 되는지를 물었다. 경찰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관례를 좀 물어보고 다시 고소장을 써 오라고 했다.

나는 법조생활 27년에 사법시험 성적도 괜찮은 편이고 경찰에 친구 준영이가 있다고 대답했었다. 형사는 준영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경찰청장 허준영이라고 하자 그는 "좋은 하루 되십시오, 충성"하고 전화를 얼른 끊어 버렸다.

국민들은 고소나 소송을 통해 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게 사법서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법기관이 오히려 서비스를 받으려고 한다. 국민을 위한 법과 다르게 내부 실무규정이 그들의 편의대로 되어 있는 게 많았다. 얼마 전 법원에 간 민원인에게서 욕이 나가고 법원직원이 쇠의자를 던진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로의 사고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한 번은 고생해서 쓴 고소장을 검사실에 제출했다. 결론만 바로 쓰면 이해하기 힘든 기업사건이라 좀 내용이 길었다. 검찰서기의 욕이 전해져 왔다. 그렇게 긴 고소장은 검찰총장이 부탁을 해도 안 읽을 거라고 전했다. 참 높은 서기였다. 선량한 공무원 중에 극히 일부지만 아직도 그런 권위의식이 남아 있다. 변호사도 당하는데 서민이 당하는 모욕감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사법서비스가 행정보다 많이 낙후됐다. 행정부는 진정서 한 장만 내도 국가의 비용으로 담당 공무원이 직접 조사를 하고 결과통보까지 친절하게 해 준다.

문장을 잘못 썼다고 트집 잡는 경우는 없다. 사법부도 그래야 맞다. 국민은 억울한 사정만 써내면 그걸 보고 법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집행해 줘야 이상적이다. 그런데 그렇지를 못하다.

법원은 복잡한 법리까지 완벽하게 갖춘 서류를 요구한다. 대학교수도 쓸 수 없는 전문적인 분야다. 다음으로 돈을 내야 판사가 심리를 한다. 가난하면 소송을 걸지도 못한다. 법률구조제도가 있지만 골고루 혜택을 받는 게 아니다. 돈 없고 판결문에 가깝게 쓸 지식이 없어서 사람들은 법 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 군림하는 사법시설 달라져야

세금을 내는 국민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사법시설은 모든 게 반대로 되어 있다. 꽃꽂이 강습실, 서예실은 만들어 놓아도 서울역 다음으로 국민이 많이 드나드는 법원 구내에 커피 한 잔 마실 휴식공간이 없다. 직원들의 고정 주차석은 있어도 변호사와 재판관계인이 차를 둘 자리는 복권 같은 행운이 와야 돌아온다.

이제 사고의 중심과 발상이 달라져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사법의 은전을 받는 게 아니다. 고소장을 내면서 눈치 보고 사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사법서비스는 담당공무원의 기계적인 일상이 아니라 그들의 소명이 되어야 맞다. 국민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그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온갖 좋은 말이 다 씌어 있는 두툼한 법전만으로는 안 된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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