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 빙속 500m 우승 0.05초 단축-어머니 "체력 약한데 큰일…지독한 놈"
논바닥에서 건진 값진 세계신기록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의 꽃으로 불리는 남자 500m에서 34초25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집념의 사나이’ 이강석(22ㆍ의정부시청)은 초등학교 시절 의정부 시내 논바닥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아버지 이기훈(48)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강석이가 태릉 실내 빙상장에서 훈련할 수 없었다”면서 “논바닥에 물을 대서 얼음이 얼면 스케이트를 타게 했다”고 회상했다. ‘이강석의 세계신기록은 논바닥에서 건졌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007년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500m 결승이 벌어진 10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스케이트장. 이강석은 1차 시기에서 34초44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로브코프(34초43)에 0.01초 뒤진 2위. 한국에서 TV를 지켜보던 어머니 노정희(47)씨는 “메달은 따겠지만 세계신기록은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체력 소모가 큰 500m는 하루에 두 번 달려 기록을 합산한다. 따라서 1차 시기가 체력 부담이 큰 2차 시기보다 기록이 좋기 마련. 실제로 로브코프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수가 1차 시기보다 2차 시기 기록이 더 안 좋았다.
평소 과묵하던 이강석은 “세계신기록을 반드시 세우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머니는 “강석이가 체력이 약한 편이라…”라며 기대를 접었다.
그러나 승부욕이 남다른 이강석은 달랐다. 이강석은 2차 시기에서 34초25로 골인했고, 어머니는 “어휴, 지독한 놈! 그렇게도 열심히 훈련하더니 결국 정신력으로 세계 최고가 되는구나”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일본의 가토 조지가 2005년 세운 세계기록(34초30)을 0.05초 단축한 이강석은 합계에서도 68초69를 기록해 시미즈 히로야스(일본)가 갖고 있던 세계기록(68초96)을 경신했다. 국내 선수가 빙상에서 세계기록을 세운 건 지난 2001년 이규혁(28ㆍ서울시청)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그러나 이규혁의 1,500m 세계기록은 샤니 데이비스(미국ㆍ1분42초32)에 의해 깨졌다. 이강석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세계선수권을 제패하고 한국에 국제전화를 걸었다. 이강석은 어머니에게 의기양양하게 “엄마, 나 힘들었어”라는 말을 건넸다.
아버지에게는 “아빠, 바쁘게 생겼다”라고 했다. 아들의 예상대로 아버지 이기훈씨는 11일까지 “낮에는 축하전화를 받고 밤에는 축하주를 사느라 바쁘다”며 활짝 웃었다. 이강석은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우승과 34초10대까지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두 가지 목표를 밝혔다.
한편 대표팀 맏형 이규혁과 여자부 이상화(18ㆍ휘경여고)는 11일 새벽 나란히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이규혁은 남자 1,000m에서 한국신기록(1분07초51)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금메달은 미국의 ‘검은 탄환’ 샤니 데이비스(1분07초28)의 몫. 이상화는 여자 500m 1차 시기에서 한국신기록(37초81)을 세우며 합계 75초83으로 4위에 올랐다.
▲ 이강석의 말
외국 기자들이 "네가 진정한 세계 최강자다"고 말해 그때서야 우승을 실감했다. 세계기록보유자 가토 등을 물리치고 우승해 더욱 기쁘다.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고 싶다. 이번 대회에서 3위를 기록한 터커 프레드릭스(69초03ㆍ미국)가 가장 위협적인 선수다.
500m는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변한다. 따라서 세계선수권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비시즌에 약점을 보완해 34초10대 기록에 도전하겠다.
이상준기자 jun@hk.co.kr
■빙판 탄환 얼마나 빠를까?-시속 52.55㎞ 사이클보다 빨라
‘빙판 탄환’ 이강석은 과연 얼마나 빠를까.
이강석은 2007세계선수권대회에서 500m 결승선을 34.25초에 통과했다. 시속 52.55㎞의 속도로 1초에 약 14.60m씩 달렸다. ‘육상의 꽃’ 남자 100m 세계기록(9초77)은 시속 36.85㎞. ‘빙상 탄환’ 이강석이 ‘인간 탄환’ 아사파 파월(24ㆍ자메이카)보다 약 43% 빠른 셈이다.
이강석이 세계신기록을 세울 때 빠르기는 세계 최고의 도로사이클 대회 투르드프랑스 우승자의 속도보다 빨랐다.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이유로 우승이 취소된 플로이드 랜디스(32ㆍ미국)는 지난해 7월 투르드프랑스에서 총 3,657.1㎞의 거리를 89시간 38분39초에 주파했다. 시속 40.72㎞의 속도.
동물 가운데 가장 빠른 치타는 시속 100㎞의 달린다. 100m를 약 3.60초에 달린다. 그러나 체력이 약한 치타는 기껏해야 100m 정도까지만 전력질주하기에 이강석의 빠르기와 비교하기란 무리다. 경주마는 시속 60~70㎞로 달린다.
이상준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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