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류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이 국제사회의 도마 위에 올라있다. 무대의 중심은 의회에서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심의하고 있는 미국이다.
소수 의원들에 의해 연례 행사처럼 추진됐던 결의안 채택 작업이 이처럼 미국 국내 및 국제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킨 적은 없었다. 친일파를 포함한 미국의 정치가들과 주요 언론들은 어두운 과거사를 축소ㆍ은폐하려고 하는 일본 지도자들의 자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성실한 공식사죄를 요구하는 미 하원의 결의안도 채택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바른 역사 못 배운 日 지도자들
역설적이지만 이번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라고 할 수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등의 발언이 역린(逆鱗)을 건드린 셈이 됐다.
아베 총리는 파문이 확산되자 ‘협의의 강제성’‘광의의 강제성’ 운운하며 발언의 정당성을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 국내에서도 ‘구차한 변명’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종군위안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 담화’를 수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자민당 내 보수ㆍ우익 성향 의원들의 작태도 커다랗게 일조했다.
걱정되는 것은 이 같은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 문제가 앞으로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를 비롯해 올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한 전후 세대가 일본 주류 정치가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배 정치가와는 또 다르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과거사의 은폐와 축소를 시도하고 있다.
인류사상 최대의 비극 중에 하나인 난징(南京)대학살 사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단적인 예이다. 1980년대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난징대학살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전후 난징대학살의 책임자로 처형된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구 일본군 중국방면사령관의 비서였던 다나카 마사아키(田中正明ㆍ평론가ㆍ2006년 사망)가 마쓰이의 일기를 토대로 퍼트린 난징대학살 허구설을 추종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나카가 마쓰이 일기를 수백 곳이나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정론은 막을 내렸고, 결국 난징대학살의 희생자 수가 너무 과장됐다는 쪽으로 논점이 돌려진 것이다.
●왜곡된 역사인식이 국익 손상
종군위안부 문제와 난징대학살 사건의 본질은 광적인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피지배국의 선량한 여성과 시민 등을 상대로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일본의 새로운 주류 정치가들은 이 같은 본질을 호도하며, 얄팍한 변명으로 궁지를 모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소중한 이웃인 한국과 중국이 언제나 역사문제만 물고 늘어진다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지만, 최대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일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 같은 과거 외면형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익을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화해와 미래지향의 출발점으로 평가 받았던 고노담화의 의미를 퇴색시킴으로써 ‘아름다운 일본’을 추구하는 일본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다. 올바른 역사 교육은 국익과 직결된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대목이다.
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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