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깁기 된 내 삶… 엉클어져만 간다소설 따위 읽고 싶지도 않은데!
최수철 씨는 <몽타주> 에서 의식과 언어의 혼돈에 내던져진 존재를, 호영송 씨는 <죽은 소설가의 사회> 에서 소설의 위기를 그려 보인다. 글쓰기 또는 소설의 운명을 직시하는 두 중견 작가의 소설집이다. 죽은> 몽타주>
<몽타주> 에는 작가가 10여년 동안 계간지에 발표했던 작품 아홉편이 수록돼 있다. 삼십대 중반의 독신녀인 나는 수사를 위해 시체 부검실에서 몽타주를 그리는 몽타주 화가다. 몽타주>
죽어 널브러진 그들은 나에게 고난도의 메시지를 발신하며, 해원을 고대하고 있다. ‘엉망으로 망가진 몸뚱이가 곧 메시지’이나, ‘그 메시지의 내용은 아무도 해독할 수 없’다. 어차피 원상 회복은 안 되고, 원상이 뭔지도 알 수 없는 이 삶에 대한 근원적 분노, 나는 그 절망과 분노로 인한 적개심에 사로잡혀 있다.
헛다리만 짚은 몽타주들은 내가 나만의 세계에 오만하면서도 자폐적으로 빠져 들어 있었다고 질책하기까지 한다(<메신저> ). 또 다른 단편 <창자 없이 살아가기> 는 일간지 칼럼을 통한 서로의 인신 공격 끝에 결국 법정에 서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법정 공방으로 펼친다. 창자> 메신저>
소설집 <몽타주> 에서는 관념과 서사가 서로 맞물려가며 긴장한다. 의식과 언어의 착종, 분열, 해체, 망상, 집착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자살병에 전염돼 가는 가상의 도시를 그린 작가의 지난해 장편 <페스트> 보다 작가 특유의 세계에 더 근접해 있는 작품이라는 평이다. 페스트> 몽타주>
소설집 <죽은…> 에 실린 같은 제목의 단편은 우화적 블랙 코미디다. 팔리지 않는 소설을 쓰다 감금된 소설가가 섹스, 폭력, 판타지, 단순화 등 요즘 잘 팔리는 소재의 글을 쓰도록 교육 받는다. 죽은…>
공연 시간 직전에 갑자기 실어증에 걸린 중견 배우를 그린 <실어의 시간이 온다> 역시 문화와 예술의 상품화에 대해 한껏 눈을 치켜 뜬다. 육체적 고통, 정신적 모멸, 포르노와 폭력 영화를 실컷 보고 난 작가는 마취 주사를 맞고 창녀촌 같은 데 내동댕이 쳐진다. 실어의>
압제의 1970년대에도 당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그는 푸념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그는 “철 지났는데도 강남으로 떠나지 못한 제비처럼 가련한 존재가 돼 저린 소설가”라는 말을 남기고 한강 투신 자살을 택한다. ‘소설 따위는 거지 발싸개로 여기’는 이 시대에 대한 저주와 함께.
<작가의 가방> 이나 <소설 속에 살고 싶어 한 사람> 에서는 작가를 서술자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이 시대에 그들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 있는지를 고민한다. <뒤늦은 추적> 에서는 한국전쟁의 기억을 통해 미국이 우리의 가해자인지 구원자인지를, <하늘의 섬> 에서는 4ㆍ19에서 KAL기 폭파 사건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간을 겪어낸 한국인의 의미를 각각 탐색한다. 하늘의> 뒤늦은> 소설> 작가의>
‘한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이란 주제로 지난해 계간지 <작가> 가 현업 작가들에게 던진 16가지 질문에 대한 재성찰이 맨 뒤에 실려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