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까. 그가 가는 곳엔 기자들이 몰리고, 하는 말마다 기사거리가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기대하는 사람, 걱정하는 사람, 실망하는 사람들이 그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고 있다.
그 자신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지만 나의 눈엔 위태롭게 보인다. 경제학자로서 또 서울대 총장으로서 신뢰와 명성을 쌓아온 그가 대선가도를 달려가면서 과연 그 신뢰와 명성을 지켜낼 것인지 아슬아슬하다. 존경받는 인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정운찬마저 선거판의 진흙탕에 몸을 버린다면 그야말로 사회적인 손실이기 때문이다.
● '비판 받는' 자리 고민하길
지금까지 그는 당당하게 말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살아왔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비판하는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 눈치 저 눈치 살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비판자가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물고 뜯는 정치판에서 그는 무자비한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서투르게 대응하고 말 실수로 오해를 부른 적도 있다. 치밀하고 명쾌한 논리를 펴던 그가 말 실수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자기자신도 몰랐던 허점이 계속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충청도에는 나라가 어려울 때 일어난 의인과 지사가 많다. 고향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그는 작년 12월 공주 향우회 모임에서 말했다.
당연히 그 말은 대선을 향해 가는 정치적인 발언으로 들렸고,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충남지사로 나올 생각이냐"는 비아냥도 들렸다. 경기고와 서울대라는 명문 인맥의 중심에 있던 그가 '충청도 사람'임을 강조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최근 그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뜻이 왜곡됐다고 말했다. "고향을 위해 할 일을 하겠다는 말은 모교인 공주의 탄천초등학교나 공주대학에 출강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해명을 듣고나니 더 어이가 없다.그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예민한 위치에 있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비판하는 사람과 비판받는 사람의 입장은 이렇게 다르다. 그가 만일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판세를 저울질하고 있다면 하루빨리 '비판받는 사람'의 처세를 익혀야 한다. 하루 24시간 일거일동이 노출되어 시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아직 비판자의 습성에서 못 벗어났다면 곤란하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대선에 뛰어들 것인지도 아리송하다. "나는 열린우리당 국민참여경선에는 안 나간다. 그쪽 꽃가마는 안 탄다. 여든 야든 어느쪽 꽃가마도 안 탄다"고 그는 말했다.
흔히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여권이 정운찬 한명숙 강금실 등을 끌어들여 오픈 프라이머리를 올스타전으로 치르고, 흥행이 잘 되면 최종후보의 지지율이 단숨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를 거부한 정운찬씨의 구상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말로 그는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심정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 혜택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일까. 누구나 자기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이 많아야 나라의 저력이 생길 것이다.
● 정치판에서 망가질 것인가
정운찬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자유지만, 무엇이 자기자리인지 더 깊이 고민했으면 한다. 대선 출마를 할 듯 안할 듯 발언이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를 한다면 6월 이후에나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는데, 그렇다면 결심이 설 때까지 침묵해야 한다.
나는 학자로서의 정운찬씨에게 호감을 가져왔고, 그 정도의 인물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누가 앉혀주는 자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싸워서 얻는 자리다.
그가 대선 경쟁에서 이길 만한 능력과 자질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나는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라는 주변의 유혹을 물리쳤으면 좋겠다. 정치판에서 망가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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