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가 다시 미뤄졌다.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던 여야 합의가 언제 있었느냐 싶다. 사회적으로 예민하고 중요한 사안들을 다루는 데 국회가 더디고 때로는 무책임한 것을 보는 게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정치적' 계산들이 달라 종종 파행을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일 게다. 이런 사태를 보며 법안들을 빠르게 약속대로 처리하라고만 재촉할 일은 아니다. 여야의 줄다리기가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데서 나온 진정한 진통인지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여야 싸움에만 골몰, 큰 의미 못 봐
그러나 사학법 문제를 두고 보면 국회의 이제까지 행보는 실망스럽다. 여야가 쟁점으로 삼는 문제들 자체가 우리 교육을 제대로 구축하기 위한 큰 그림 안에서는 오십보 백보이고 핵심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의 주장으로 관철되든 사학법이 제대로 자리잡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싸움 자체에서 이기고 지는 데 골똘한 나머지 여야 모두 싸움 자체의 의미를 되새겨 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당초 사학법 개정은 사학법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충분하게 고민하지 못한 채 이뤄졌다. 개정을 발의한 의원들은 그 이유로 '민주성과 투명성 및 공공성을 제고'하고, '21세기의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사립학교의 발전'을 도모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개정된 법률에서 보듯 개방이사를 두고 관할청의 감독이나 개입에 힘을 실어주면 사립학교가 21세기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개방이사나 감사가 참여하면, 또는 정부(관할청)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법인 운영이 민주적이고 투명하며 공공적이게 될 것인가? 과거 숱한 사학의 부정과 비리들은 법인 이사회를 개방적이게 구성하지 못해서 막지 못했던 것인가?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개정된 사학법이 효력을 낸 결과로 위촉된 개방이사들을 보면 기존의 이사들과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관치(官治)가 우리 교육에 가져온 폐해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는 게 우선적 과제라면 사학법을 개정하는 것보다 법 집행에 관련된 우리 사회의 관성을 바꾸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사학 문제가 꾸준히 불거지고 해결되지 못했던 것은 법인 이사회 안에서의 견제가 없었기 때문이기보다는 법인 '밖의' 관계당국이 여러 가지 이유로 문제를 미봉하거나 눈감아 왔기 때문이다.
● '국가의 교육 독점'부터 다뤄라
사학법을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명실상부한 사립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가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에 대한 법률은 우리 사회에서 사립학교가 어떤 뜻을 지니고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 규정하는 틀이 된다.
기존의 법은 사실상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구분해주지 않는다. 공립학교와 똑같은 모습으로 다만 교육 기회가 여러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기여해주면 사립학교로서 역할은 족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와 달라야 하는 데 존립 이유를 둔다. 공립학교를 선택하기 싫을 때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게 사립학교다. 이 대안을 부정하자면 국가는 교육 독점을 선언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 독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다양한 기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학법 논의에서는 부정과 비리 문제보다 먼저 국가의 교육 독점 문제를 다뤄야 바른 수순이다. 이 논의를 건너 뛴 상태에서 사학법 싸움의 의미는 사소하다.
강태중ㆍ중앙대 사범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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