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금융기관장은 연임하지 못한다는, 경제관료 사회와 금융계에서 10년 넘게 이어져온 불문율이 깨졌다. 정부는 7일 강권석(57) 기업은행장을 임기 3년의 차기 행장으로 내정했다. 국책 금융기관장이 연임한 것은 90년대 초 이형구 산업은행장(당시 총재) 이후 처음이다. 기업은행장 연임은 74년까지 3연임한 정우창 행장 이후 33년 만이다
강 행장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연임 성공 소감을 묻자,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두 번째 임기의 목표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구상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중소기업들을 제대로 지원 육성하는 것이 기업은행 향후 발전 전략의 제일 원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행장의 최우선 과제는 기업은행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중간지대에 서있는 기업은행은 수익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정부가 추진중인 민영화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조만간 기업은행 보유 지분 중 15.7%를 블록세일 방식으로 매각할 예정이다. 이후 단계적으로 정부 지분을 30%선까지 줄여나갈 계획이다. 강 행장도 민영화 과정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고 점포 확대와 사업 다각화를 진행해왔다. 강 행장은 "아직 대상 기업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기업은행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금융업체가 있다면 인수 문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행정고시 14회로 공직에 입문해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을 역임한 재무관료 출신인 강 행장은 2004년 기업은행장에 취임한 뒤 민간 은행장 못지않은 파격적인 공격 경영을 해왔다. 그 결과 기업은행은 지난해말 인수ㆍ합병(M&A) 없이 자력으로 총자산 100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올렸다. 3년 전 주당 7,600원 수준이던 주가도 최근 1만8,000원대까지 상승하는 등 시장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강 행장은 창립 50주년이 되는 2011년까지 순이익 2조원, 시가총액 20조원, 자산 200조원 목표를 달성, 중소기업 종합 금융그룹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3년간 관료 출신 이미지를 씻어내고 연임에 성공한 강 행장의 다음 행보도 이 같은 중기목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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