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한낱 부품으로 쓰기엔 너무나 위대한 기계
*땅·날씨… 총체적 통찰이 필요했던 농부서
*부분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노동자로 전락
*‘과학적 관리’ 속 우리는 과연 풍요로운가
찰리 채플린이 처음 런던 무대에 선 것이 빅토리아 시대인 1894년이고 키스톤 스튜디오의 영화에 처음 출연한 것이 1914년이니 한 세기 전 사람이다. 이젠 낡고 낡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법도 한데 지금도 음반 가게에선 채플린의 영화를 낱개로도 팔고 묶어도 판다.
잊을만하면 한번 씩 새로운 포장을 입고 진열장에 놓인다. 그를 기념하는 크고 작은 영화제도 적지 않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채플린의 영화를 본다는 이야기.
저 마다 그 이유가 다르겠지만 내가 채플린의 영화를 때때로 플레이어에 거는 이유는 그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처한 조건을 냉철하지만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내 가슴 한 구석을 묘하게 울린다.
채플린의 명작선 중에 <모던타임즈> (찰리 채플린 감독, 1936)에 자주 손을 대는 편이다. 이 영화는 떠돌이 노동자의 이야기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떠돌이’라. 산업혁명 이전에 떠돌이는 아주 예외적인 존재였다. 모던타임즈>
곰곰이 따져보면 사람들은 땅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을 보살피고 그 땅의 소출을 가지고 의식주를 해결하던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을 떠날 수 없었다. 굳이 그 시대의 떠돌이를 찾자면,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며 구걸하는 거지나 장이 선 곳을 찾아 다니던 장돌뱅이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산업혁명은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새로이 등장한 대규모 공장은 많은 노동자를 집어 삼켰다. 많은 사람들이 땅과 결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규모 공장의 작업은 규격화되어 있고, 이러한 단순 작업에 투입되는 사람은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된다. 농부는 논밭을 경작하기 위해 절기, 기후, 강수량, 땅의 성질과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들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해야 한다.
하지만 공장 노동자는 기계 부속처럼 단순한 동작만 하면 되었으므로 자신이 하는 한 가지 일만 잘 알면 된다.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총체적인 통찰은 별로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영화에서 떠돌이 노동자가 그랬듯이 반복적으로 너트를 죌 줄만 알아도 어찌어찌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떠돌이 노동자를 <모던타임즈> 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을 보면 채플린은 현대인의 운명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모던타임즈>
‘떠돌이’를 양산해낸 공장의 조직과 작업 방식은 테일러(F. W. Taylor)와 포드(H. Ford)의 이론을 근거로 삼고 있다. 19세기 후반, 규모가 커진 공장을 조직하고 움직일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철강회사에서 일하던 테일러는 노동자들이 하는 작업의 시간을 측정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정하고 목표량을 달성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작업의 효율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량과 시간의 표준화를 바탕으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 흘러가는 물건들에 단순한 조작만을 가하면 되도록 작업대를 설치하고 필요 없는 동작을 줄인 일괄 생산 체계를 포드가 자신의 자동차 공장에서 현실화시켰다.
이러한 조직과 작업 방식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실제로 포드는 스스로 고안한 새로운 생산 방식을 이용해 자동차의 조립 주기를 5시간 50분에서 1시간 33분으로 단축시켰고 가격도 80% 가량 낮추었다.
1914년에 28만대에 그쳤던 생산량도 1921년엔 100만 대로 늘어났다. ‘과학적’이라고 명명된 관리 기법에 힘입어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의 부품처럼 협력하는 작업이 가능해졌고 늘어난 생산력에 기대어 현대는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구석구석 많은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물질적인 풍족함만이 행복의 기준이라면 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수정과 보완이 따랐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테일러와 포드의 방법은 여전히 우리의 일터를 지배하고 있다.
채플린은 떠돌이의 운명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벨트 앞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 잠시 일손을 놓을라치면 벽에 있는 화면에 감독자의 얼굴이 등장한다.
“빨리 작업장으로 돌아가!”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한 사람이 재채기라도 하여 조금이라도 작업이 지체되면 난리가 난다. 모두가 일제히 일손을 놓든지, 재빨리 놓친 일거리를 따라잡아 다음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채플린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웃다가 문득 느끼는 섬뜩함.
분명히 채플린은 조금의 틈도 없는 삭막함, 놓쳐버린 부품 때문에 생길지도 모르는 불량품, 그리고 그 불량품들이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커다란 사고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 사고의 크기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영화에서 자동 급식기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사람의 밥 먹는 동작을 연구해서 표준화된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밥을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먹이는 장치를 만들었다. 장치가 꽤 유연하게 움직였지만 그 기계는 사람의 동작을 모두 예측할 수 없었다. 결국 이 신기한 장치는 음식을 입이 아닌 엉뚱한 곳에 마구 쑤셔 넣는다.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채플린의 뛰어난 슬립스틱 연기에 배꼽을 잡는다. 하지만 자리에 묶여 있는 채플린의 표정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우리는 과학의 가르침으로, 숨을 쉬는 것이 자연의 정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의 산소를 허파를 통해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산소를 헤모글로빈이라는 작은 ‘기계’가 온몸으로 전달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산소를 이용해서 자동차가 연료를 연소하듯이 우리 몸도 연료를 태워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리의 몸이 하나의 잘 짜인 기계라고 믿고 있다. 사람이 기계라면 커다란 공장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기계와 손발을 척척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라는 기계가 아주 복잡하다는 것. 우리에겐 인간처럼 복잡한 기계의 움직임을 오차 없이 예측할 능력이 없다.
여전히 사람들은 테일러가 고안 했던 ‘과학적’ 관리 아래 놓여있고 ‘과학적’ 관리는 몸에 맞지 않는 무거운 굴레이다. 기계공, 선박공, 웨이터, 가수. 그 어디에도 자신의 몸을 맞추지 못한 채플린이 소녀와 함께 떠난 길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것이 궁금해서 오늘도 <모던타임즈> 를 플레이어에 건다. 모던타임즈>
과학평론가·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주일우 사이>
●‘과학적 관리’ 빛 바랬나
비인간적 생산 방식‘포디즘’… 이론적·시대적으론 비판 받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 속에선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프레데릭 테일러는 전통에 기대거나 어림짐작으로 작업을 진행하던 것을 개선하고자 '과학적 관리'를 주장했다.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포디즘과 더불어 공장에서 효율적인 대규모 생산을 가능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심지어 소련 정부도 1930년대에 이 관리 체계가 가진 효율성을 높이 사 5개년 계획을 운용하면서 '과학적 관리'에 능통한 미국인들을 고용하고 포드 공장과 같은 설비를 만들었다. 스탈린은 레닌주의의 핵심은 러시아의 혁명정신과 미국의 효율성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역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과학적 관리'와 이에 근거한 포디즘은 극단적인 분업과 단순반복적 작업 때문에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지목되어 노동자들의 불만과 집단적 저항의 표적이 되었다.
소비자 기호가 다양해지고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론적 공격도 거세졌다. 이제 '과학적 관리'는 주로 새로운 경영 방식을 언급할 때 개선해야 할 방법으로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적 관리'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이유는 테일러리즘의 핵심적 장치가 여전히 이 사회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관리'는 이전에 숙련 노동자들이 가졌던 작업에 대한 지식을 관리자의 손으로 넘겨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분리시켰다.
자신이 하는 일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구체적인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어느 쪽이든 극단적인 분업에서 약간 비켜섰다고 해도 여전히 존재론적 통찰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공장에서 '과학적 관리'의 빛이 바랬을 수는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과학적 관리'는 더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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