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구레나룻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는데, 알 것 같아요. 어른 구레나룻, 아기 구레나룻." 한국계 입양아 미국 스키선수 토비 도슨씨가 친아버지를 만났다. 장성한 아들은 빼다박은 듯한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했고, 한 많은 아버지는 "세 살 때 밥상에 넘어져 왼쪽 눈썹 끝에 상처가 났었다"고 기억을 말했다.
도슨씨가 지난해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뒤 친아버지를 찾겠다고 했을 때, 국내에선 10여명이 "내 아들 같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중에 나이와 외모까지 비슷한 사람이 그렇게 많았으니 참 힘든 세상살이였던 듯 싶다.
■ DNA(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쌍이 0.3마이크론(100만분의 1m) 간격으로 배열돼 있고, 하나의 세포에 들어있는 염색체 염기쌍을 모두 합치면 60억 개가 된다. 사람의 몸은 총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한 사람의 몸 속 DNA를 모두 연결하면 그 길이는 얼마나 될까? 서울대 캠퍼스(지구표면)에서 태양계 끝(명왕성)까지다. 약 59억㎞로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도 5시간 넘게 걸리는 길이다. 한국일보사가 서울대 자연대 등과 함께 지난달 22일 주최했던 '청소년을 위한 제14회 자연과학 공개 강연'에 나왔던 질문이고 답이다.
■ 도슨씨의 구레나룻과 아버지의 밥상머리 상처 기억이 친자확인의 결과였다면 그 원인인 물적증거는 '동일한 DNA'였다. 세포 속 60억 개의 DNA 가운데 대대손손 이어지는 특징을 나타내는 인자는 16개로 조사돼 있다. 이 16개가 순서까지 일치할 경우 같은 혈육일 가능성이 높다.
이론상으로 '높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100% 확실하다. 거꾸로 하나라도 다르면 절대 아니다. 남자(XY염색체)의 성징을 구분하는 Y의 경우 그 특이성이 뚜렷하지만 여성(XX)의 경우는 확률이 떨어져 일반 DNA검사 외에 미토콘트리아DNA 검사를 곁들여야 한다.
■ 부자관계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미식축구 영웅 하인즈 워드처럼 모자관계를 확인하려면 좀 복잡하다. 프랑스인 영아살해 사건에서 1차 검사에서 아버지를, 2차 검사에서 어머니를 확인한 것도 같은 이유다. 난이도를 따지면 부자, 모녀, 부녀, 모자 순이다. '씨도둑질은 못한다'고 한다.
부계사회의 산물인 속담이지만 과학의 발달로 '밭도둑질'도 불가능하게 됐다. 누가 씨도둑이고 밭도둑인가. 우리의 사회요 우리의 현실이다. 피해자들이 나서서 입양아 재단을 설립하는 등 '도둑 근절'에 나서고 있으니 도둑질을 방치한 우리로서는 부끄러울 따름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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