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는 망언으로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이번에는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사과촉구 결의안을 채택한다고 해도 일본정부는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베 총리는 5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 하원의) 결의안은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하지 않고 있고, (전후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베 총리는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담화’(1993년)에 대해서는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거듭해서 밝혔다.
아베 총리의 결의안 거부 선언은 미 하원 결의안에 대한 일본정부의 일반론적인 입장을 설명한 것이지만 최대 동맹국인 미국 의회의 결의를 무시하겠다는, 일본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인 ‘직접 선언’이라는 점에서 파문이 예상된다.
이미 미국 정계는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려는 일본측의 집요한 활동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일본은 벌써 사과했다”며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는 지일(知日)파 미국 의원들까지 아베 총리의 ‘강제성이 없었다’는 발언이 사실과 거리가 먼 망언이란 점에서 입장이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에서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대표가 4일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에 의문이 간다”고 정면으로 반박하는 등 비판이 일고 있다.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제출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데다 지난 달 열린 하원 청문회에서 한국과 네덜란드 출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의 반인류적 범죄에 대해 육성증언을 한 터여서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4월 미국을 방문하는 아베 총리가 국제사회의 비난이 뻔한 상황에서도 이처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고노 담화가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터라 미 하원의 위안부 비난 결의안 가결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내달 지방자치 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의 결집을 통한 지지율 확산을 겨냥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정부는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노력 등 최근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등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정부 역시 다음달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일본 방문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인지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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