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세웠던 운동 계획은 쌀쌀한 날씨를 핑계로 계속 미뤄졌다. 이제 봄.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유혹하면서 운동 계획을 다시 세운다. 거창하고 격렬한 운동이 폼은 나겠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마음의 준비조차 어렵다. 그냥 걷자. 걷는 것은 생각보다 몸의 원활한 순환에 좋고,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다. 특별한 테크닉이나 힘이 필요 없으니 남녀노소 모두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다리로 걷지 말아라(?)’
세상에 뭐 이런 뚱딴지 같은 주장이 있을까. 때 이른 봄볕이 어서 빨리 겨우내 묶어뒀던 두 다리를 풀고 밖으로 나가 걷고 뛰자고 유혹하는 요즘. 진짜 건강을 생각한다면 다리로 걷는 습관을 버리라고 외치는 희한한 ‘워킹(Walking) 강사’를 만났다.
이 강사의 원래 직업이 독특하다. 다름아닌 성악가다. 테너 신왕홍(45). 우렁찬 목소리가 연미복과 오페라 무대에 썩 어울림직한 그가 “잘못된 다리 보행이 건강을 해칩니다”라며 “효과적인 체형 보정과 다이어트를 위해선 허리로 걷는 보행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고 말한다. 신씨는 지난 겨울 아예 ‘테너 신왕홍의 허리보행’이라는 제목의 책도 내놓았다. 성악을 전공한 음악가가 걷기운동에 쏙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성악과 걷기가 접점을 찾은 배경은 이렇다. 신씨가 한창 성악 공부를 하던 90년대 초반 이탈리아 유학시절.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사랑의 묘약’을 관람한 후 그를 만나 조언을 받았다. 그는 신씨에게 “배에 힘이 들어가 몸이 굳어졌고 그래서 호흡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학시절 다른 학생들보다 부족한 레슨 경험을 극복하려고 단전으로 힘을 모으는 기(氣)체조를 배운 게 오히려 화근이 됐던 셈이다.
신씨는 이 때부터 각종 의학서적을 탐독하고 의사로 활동하는 친척들의 도움을 얻어 말 그대로 배의 ‘힘을 빼는’ 보행법 개발에 들어갔다. “발성을 쉽게 하도록 체력확보를 위해 그 동안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해왔지만 별 효과가 없고 오히려 피로만 쌓였던 경험을 되살려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신씨는 나름대로의 오랜 연구 끝에 다리에 힘을 주는 대신 몸의 근본 축이 되는 허리에 무게 중심을 둬 걸으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횡격막의 운동량이 많아져 장기의 순환이 좋아지고 폐에도 자극을 줘 호흡이 안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명 ‘허리보행’의 탄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척추에 병이 많이 생기고 그래서 디스크 전문 병원들이 호황을 누리는 나라가 없습니다. 좌식 문화에 익숙해 자연스럽게 등이 굽고 배에 힘이 들어가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반대로 허리 근육의 힘이 떨어져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신씨가 권하는 ‘허리보행’은 허벅지 근육을 추진력으로 빨리 걷는 일반적인 걷기 운동과 다르다. 지방을 태우기 위해선 속보를 해서 땀을 쏟아야 한다는 걷기운동의 ‘교과서’ 에는 일종의 도전장이었다. ‘허리보행’은 다리의 힘을 빼고 허리의 힘으로 되도록 근육을 이완시킨 채 걷는 것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속보 보다 느린 속도로 걷게 되지만 허리보행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빨리 걷는 게 쉬워진다고 신씨는 설명한다.
이래서 무슨 운동이 될까. 그런 마음에 허리보행을 직접 따라 해봤다. 신씨가 가르쳐준 대로 입술을 내밀고 아래턱을 앞으로 당긴 후(이렇게 해야 숨을 코로 쉬게 되고 자연스럽게 목 뒤부터 허리 라인까지 힘이 들어간다.) 몸의 중심 축이 허리에 있다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별 동작이 아닌듯하지만 어느새 배가 이완되고 어깨가 쉽게 펴져 발목 등 다리관절에 쏟아지는 하중이 확실이 줄어든 기분이다. 덕분에 발꿈치에 이어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이상적인 보행도 쉽게 된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내장기관이 풀리고 그래서 횡격막이 잘 움직여 호흡이 편해진다는 신씨의 설명이 이해가 갔다.
신씨는 허리보행을 쉽게 이해하려면 눈을 감고 걸어보라고 권한다. “맹인들이 어떻게 걷나 보세요. 그들은 항상 허리를 펴고 가슴을 열어 척추를 중심으로 걷습니다. 감각이 배제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보행법이 가장 우리 인체에 적합한 것 아닐까요.”
신씨는 “속보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분명 허벅지 근육이 당기거나 한 쪽 다리의 관절이 불편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게 바로 다리 힘으로 걷는 보행법의 약점입니다. 다리 근육을 이완시킨 상태에서 걷는 허리보행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고 이로써 체액의 순환도 좋아져 오히려 무작정 빨리 걷는 운동보다 다이어트 효과도 높은 편이죠” 라고 허리보행의 장점을 설명한다.
신씨는 하루 평균 이렇게 4~5시간을 걷는다. 그런데도 신발은 딱딱한 구두를 고집한다. 이유를 묻자 “쇠로 만든 굽을 달은 말도 아무 불평 없이 잘 달립니다. 다리 힘으로 지角?걷는 사람만이 푹신한 신발을 원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신씨는 이미 교육인적자원부 연수원 강의, 백병원 목요 특강, 중앙대병원 특강 등 100회가 넘는 세미나에서 허리보행을 강연한 경력을 갖춘 걷기 운동 전문가다. 의학에 관해선 비전문가인 그의 보행법을 배우려고 적지않은 대학병원 교수들과 한의사들이 개인교습을 신청할 정도다.
“봄이 오면 구청에서 시민들을 위한 걷기 강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기자님도 제 말대로 걸어보세요. 배가 쑥 들어가고 자세가 좋아져 키도 커 보일 거라니까요. 딱 두 달만 실천해보세요.”
●허리보행
1.허리보행을 위해선 호흡이 중요하다. 걸을 때 신씨의 얼굴을 보면 입술을 모아 숨이 코로만 가도록 하고 아래턱을 약간 앞쪽으로 내밀었다. 이렇게 하고 걸으면 다리가 아닌 허리로 힘이 가는 게 느껴진다. 타이거 우즈도 허리 순발력을 위해 티샷 때 이러한 얼굴 표정을 짓는다.
2.빨리 걷다 보면 발보다 무릎이 앞서나가 허벅지 힘에 기댄 보행이 돼 금세 다리가 지친다. 발이 무릎보다 먼저 나온 상태에서 다리를 쭉 펴고(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발바닥과 지면이 이루는 각도를 10~20도로 유지해 걷는다. 각도는 익숙해질수록 줄여준다.
3.공중에 뜬 발은 완전히 힘이 빠져야 한다. 지면에 닿은 발에 체중이 실리도록 하고 나오는 발은 허리와 중둔근의 힘으로 들어 올린다. 골반과 척추가 중심이 되어서 이동한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도 허리보행 초보자에게 도움이 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 봄이다! 걷자…수도권 워킹 코스
봄 기운이 완연하다. 자리를 훌훌 털고 밖으로 나가 겨우내 쌓였던 지방을 태워 없앨 때다. 흔히 운동을 한다고 하면 달리기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생각하기 쉽지만 전문가들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걷기’를 권한다. 수술에서 회복 중인 환자에게 의사들이 걷기를 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 여름 옷을 자신 있게 벗고 싶은 몸짱이 되고 싶다면 이제 신발끈을 질끈 묶고 워킹 코스로 출발하자.
걷기는 자유로운 운동이다. 다만 운동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일주일에 5회 이상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당히 먹는 사람이라도 하루 섭취하는 열량 중 보통 300Kcal가 남아 몸에 쌓인다. 시속 6.5km의 속도로 1시간동안 걸으면 340Kcal가 소모되기 때문에 체중 감소를 목표로 한다면 최소한 이 정도의 운동이 필요하다. 게다가 빠르게 걷기는 심장과 폐의 기능을 강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 물론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열량은 소모되므로 무리할 필요는 없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조비룡 교수는 “건강을 위해서는 체중을 줄이는 것보다 심폐기능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면서 “체중 감소가 목표라면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심폐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분당 최대 맥박수의 60~80%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대 맥박수는 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값이므로 40세라면 맥박수를 108~144 사이로 맞춘다. 측정이 힘들다면 ‘대화는 하되 노래는 못 부르는 정도’로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다.
목표가 설정됐으면 준비운동에 들어가자. 준비운동은 몸에게 ‘이제 운동을 시작한다’고 예고해주는 것으로 운동의 효과를 높일 수 있고, 부상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특히 40세 이상은 걷기 전 온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적어도 5분 이상 해야 한다. 스트레칭은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는 것으로 시작해 허리 목 팔 다리를 풀어주는 동작으로 이어간다.
걷기는 혈압이 높은 아침보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자. 구두를 운동화로 갈아 신고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등줄기와 허리를 곧게 펴고, 목을 세워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한다. 땅을 디딜 때는 발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게 하고, 앞꿈치로 차면서 앞으로 나간다. 조금씩 속도를 높이면서 맥박수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며 걷는다. 물병 하나는 기본, 나머지는 구애받을 것이 없다. 운동 후 간단한 점심은 입맛을 돋우는 가장 좋은 양념이다.
일단 걷기를 시작했다면 일주일에 5일 이상 꾸준히 해야 한다. 처음 1주일은 4km를 1시간 동안 가볍게 걷는 것으로 시작해 매주 거리를 조금씩 늘려나가자.
한국워킹협회 윤방부 회장(연세의대 교수)은 “최소한 20분 이상은 해야 체내 지방이 소모되며, 식후 2~3시간 이상이 지난 공복에 하는 것이 살 빼는데 좋다”면서 점심식사 이전 운동을 권했다. 윤회장은 “뒤로 걷기, 맨발 걷기 등 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얻는 것보다 위험이 더 크다. 일반적인 걷기만으로도 충분히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운동화·양말은 기능 고려, 운동복은 개성있게
운동복은 걷기 쉽고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소재와 디자인이라면 무난하다. 다양한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색상과 디자인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양말만큼은 잘 골라야 한다. 매일 1컵씩 발에서 배출되는 땀을 흡수하는 데는 면이 제일 좋지만 신축성과 보온을 생각한다면 순모나 털 제품도 고려해볼 만 하다. 두툼하고 탄력이 있는 양말을 고르는 것이 포인트.
흔히 등산화나 조깅화를 신고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등산화는 재질이 딱딱하고 무거운데다 쿠션이 좋지 않아 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조깅화는 뛰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가볍긴 하지만 신발창이 얇은 것이 흠. 때문에 걷기전용 신발을 준비하는 게 좋다.
전체적으로 통기성이 좋으면서 조깅화처럼 뒷꿈치와 땅이 닿는 부분이 비스듬해 체중을 적절하게 분배시켜 주는 제품을 고른다. 전체적으로 푹신하게 쿠션이 있는 제품이 피로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크기는 발끝에 1cm의 여유를 두는 정도가 가장 알맞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의 걷기에 대한 의견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무리 없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걷기가 달리기보다 좋은 이유로 꼽았다. 물론 달리기가 열량 소모는 훨씬 많지만 체지방 감소 효과만 놓고 본다면 그 차이는 미미하다.
동일하게 30분 운동을 할 때 달리기는 전체 소비 열량 250Kcal 중 1/3에 해당하는 82Kcal를 지방에서 얻지만 6.5km/h 정도의 속도를 내는 빠르게 걷기는 142Kcal 중 71Kcal 분량의 지방을 태워 없앤다.
더구나 걷기는 비만 환자에게 더욱 좋은 운동이다.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비만을 완화시키고 예방하는 데도 효과 만점이다.
건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최재경 교수는 “걷기는 체지방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외에도 LDL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성인병 위험을 줄여준다”면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 필요한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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