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이번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백미는 중등과정 5개 교과군을 6개로 늘린 것이다. 내신ㆍ수능ㆍ논술/면접으로 이어지는 대학입시에서 이것의 뜻은 내신부담 증가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참 자상하게 보살피는 교육부가 수능 부담도 안 줄이기로 한 배려는 주목받지 못하니 교육부로서는 정말 섭섭할 일이다.
2005년부터 나는 '도덕'과 '윤리'에서 토론자와 발제자로, 교양과목인 '철학ㆍ논리학'에서는 연구위원으로 개정시안 작성의 전 과정에 참여했다. 당시 도덕ㆍ윤리 교과는 과거 '국민윤리'의 행태를 완전히 벗지 못하고 사회ㆍ가정 과목과 내용이 중복되어 정체성 위기에 처했었다.
특히 일각에서는 도덕 교과 폐지 움직임이 태동 중이었다. 도덕교육의 두 담당자 가운데 철학계는 도덕교육에 대한 윤리교육계의 진정성을 의심했고, 윤리교육계는 철학계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였다.
이 어려운 처지를 혁파하기 위해 연구작업을 맡은 교육과정평가원은 아주 신선한 조치를 취했다. 평가원은 "함께 하는 개정 작업"이라는 모토 아래 교과 관련 학술교육단체들에서 대표성 있는 연구위원들을 모으고 범학계적 토론을 조직했다. 이 과정은 도덕ㆍ윤리 교육의 책임자인 철학계와 윤리교육계가 더 나은 도덕교육을 위해 상호신뢰와 협조의 분위기를 축적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철학계는 사회ㆍ가정 교과와 별로 구분되지 않던 도덕 교과서를 도덕 교과서답게 만들 철학적 기초와 내용을 제시했다. 윤리교육계는 교육 경험을 제공하고 철학계와 협동할 분위기를 마련했다. 이로써 유신이 강요했던 국민윤리를 거의 완전히 탈피한 도덕ㆍ윤리 교과서의 뼈대가 마련되고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도 조정되어 "철학계와 윤리교육계의 대연정"이라는 이례적 찬사까지 받았다.
그런데 교육부가 소집한 심의회를 통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단 한 번에 날아갔다. 선택과목 중 하나인 <전통윤리> 는 거의 선택하는 학생이 없어 철폐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결론 내려 일체의 연구가 없었다. 그런데 윤리 교과에 "수능 시험 요건을 부여하기 위해" <전통윤리> 를 존속시킨다는 조처는 마지막 심의회 때 교육부 간사의 일방적 통보로 이루어졌다. 전통윤리> 전통윤리>
심의위원장도 사전에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나아가 도덕ㆍ윤리의 교과 성격과 목표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이 교과에 철학이 관련되었음을 명기하는 모든 표현이 마지막 순간에 삭제되었다. 역시 교육부의 일방적 조처였다.
결국 철학계는 도덕ㆍ윤리 교과서를 일신할 아이디어만 편취당하고 정식 고시안에서는 일절 언급되지 않는 '골방 귀신'이 되었다. 그러면서 '철학', '논리학' 과목마저 일언반구의 "조사ㆍ연구"나 공청회도 없이 '생활과 철학', '생활과 논리'로 개명되었다.
철학계가 왜 이제야 나서느냐고? 도덕ㆍ윤리 교과심의회 명단을 보라. 30명 위원 가운데 철학계는 단 한 명이다. 그리고 논리ㆍ논증적 글쓰기 전문임에도 철학계는 '논술' 교육 강화를 위한 논의 자리에 초청되지도 않았다.
2년간 전 학계를 요동시켰던 연구과정은 "참조자료용"이고, 심의회는 자문이나 하고, 결정은 교육부가 한단다. 이 모든 과정을 막판에 몽땅 뒤집는 교육부 안에 절대 몸통을 드러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집값 올린 건교부에 이어 교육부를 참여정부의 또 한 마리 망둥이로 만드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은?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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