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탈레반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데이비드 리처즈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사령관)
2001년 9ㆍ11 테러로 미국이 아프간을 공습한 후 6년.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괴멸된 것처럼 보였던 탈레반 반군이 부활하면서 아프간 정세가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아프간 재장악에 나선 탈레반은 27일 아프간 바그람 미군 공군기지에서 아프간 안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중동지역을 방문 중인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노린 자살폭탄테러를 감행, 자신들의 건재를 알렸다. 체니 부통령이 지닌 상징성을 앞세워 나토 회원국의 여론을 분열시키고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후 아프간 안정화 작전을 펼치고 있는 NATO 회원국들은 “탈레반과의 전투 강도는 이라크 상황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1년 이후 탈레반의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민간인 4,000여명, NATO군 200여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탈레반의 거점이 넓어지면서 NATO 주둔군 대변인이 “아프간 탈레반 반군이 올 봄 자살폭탄 테러와 도로매설 폭탄 공격 등 다국적군에 대한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을 정도다. 탈레반 반군도 아랍 위성 TV 알 자지라와의 회견에서 “춘계 대공세를 위해 6,000명 이상의 전사를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 같은 치안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 3만여명인 아프간 병력의 증강을 요청하고 있지만, 회원국들은 국내 반대여론으로 인해 몸을 사리고 있다. 특히 탈레반의 근거지인 칸다하르 등 아프간 남동부는 치안상황이 극도로 불안해 이곳에 자국군을 파병하려는 곳은 미국과 영국밖에 없는 실정.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등은 북서부 안전지대에서의 평화유지 활동 등에만 참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미국과 NATO 회원국들간의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영국이 최근 “미국과 소수 동맹국만이 아프간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서 앞으로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아프간 남부로의 1,400명 추가 파병을 결정했지만, 이탈리아는 아프간 파병 연장 동의안이 상원에서 부결돼 내각이 총사퇴하는 등 극심한 정국 혼란을 겪었다.
아프간 미군이 지지부진한 원인 중 하나는 핵심 군 장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 감사관실에 따르면, 미군은 장갑차, 대포, 중기관총, 통신기기 등 핵심 무기들이 상당수 부족해 장비가 도착할 때까지 작전을 연기, 취소하거나 심지어 장비 없이 작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 미군이 탈레반 반군이 버리고 간 무기를 주워 ‘재활용’한다는 소문마저 돌 정도다.
탈레반의 부활은 외국군과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분노한 아프간 국민의 민심이 탈레반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산악지대에서 재배한 아편으로 전세계 마약의 3분의 2을 공급하는 탈레반은 이 같은 막대한 군자금을 바탕으로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부 지역에 여학생들을 위한 학교 등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권력에서 축출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민심 달래기에 노력해왔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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